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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주제/배경/사건구성 근대문학의 종언

2007.12.19 23:12

Evangelista 조회 수:570 추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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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近代文學の終焉)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문예이론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사용한 말입니다. 이에 관한 그의 글은 90년대 후반 쓰여져 급격히 담론화하여 동아시아 문단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근대문학의 정의


근대문학이라는 것은 한 장르를 설정한다기보다는 중세 때의 패트런 문학에서(즉 후원자를 위해 글을 쓰던 문화에서) 근대로 들어오며 일반 소비자를 위한 글을 쓰게 된 이후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말하는 근대문학은 주로 리얼리즘적인 것으로서, 반드시 리얼리즘 문학이 아니더라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탐구를 주요 골자로 합니다.


쉽게 사용되는 순수문학이란 것은 근대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멉니다. 순수문학이라는 용어를 본격문학과 혼동하는 분들이 많은데 문학의 독자설정과 주제의식 등으로 분류했을 때 사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으로 나누는 것은 용어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분류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정도가 맞습니다.


순수문학이란 것은 해방 이후 서정주, 김동인 등이 내건 것으로 오히려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멉니다. 미당의 시나 김동인의 후기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들은 작품 내에서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를 보여 주며 문학의 사회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합니다.


즉 근대문학은 순수문학보다 더 큰 범주인 본격문학과 거의 같은 용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순수문학만을 따졌을 때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참여문학으로 분류되어 순수문학 범주에 들어가지 않지만 본격문학으로 따진다면 미당의 시건 조세희의 소설이건 모두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근대문학의 종언, 그 요점


특히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근대문학은 주로 소설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라타니가 근대문학이 종말을 고했음을 선언한 것은 문학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강의 중 한 부분에 따르면, "상품으로서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일찍이 문학이 일본사회에서 지니고 있었던 역할이나 의미는 끝났다."고 합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80년대까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미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분위기를 조장했던 한국의 근대문학은 90년대 이후 들어 급격히 그 영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어간에서 새로이 형성된 것이 상업문학이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80년대 후반, 한국은 90년대 초반부터 상업문학들이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쇼크가 되었던 '로도스도전기'가 그 즈음 나왔고 '퇴마록'이 발표된 시기도 그 때입니다.


사실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자면 골때리는 문학용어들을 나불거려야 하기 때문에 그에 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라타니 이후 동아시아 문단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영향력의 한 측면에서의 문학의 기능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문학을 써야 하는가.


사실 이것은 개인의 취향입니다. 본격문학을 쓰건 상업문학을 쓰건 궁극적으로 선이나 악을 판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단의 지배 헤게모니는 상업문학을 자신들의 문학에 대해 타자화하여 다소간 악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있습니다. 그러나 문단의 골간 작품들의 영향력이 상실된 이래 문단도 급속히 제도권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즉 문단 권력은 점차 해소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근대문학과 현대 발흥한 상업문학의 근본적 차이는 그 주제의식의 차이입니다. 또한 독자층과 작가층의 설정에 있어서도 차이를 두게 됩니다. 아무래도 상업문학보다는 본격문학 쪽이 지식층의 문학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부디 상업문학을 쓴다고 해서 그 반대편인 본격문학의 작가들을 타자화하여 비난하지는 마십시오. 보통 사람들은 문단에서 본격문학을 쓰는 작가들을 머리가 굳어 그 우물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만 이미 그렇게 말하는 시점에서 그 사람들도 머리가 굳은 것입니다. 자신의 상대 계층을 타자화시켜 공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컴플렉스를 숨기려는 행동의 하나이니까요.


 


근대문학이 죽었다고 선언은 되었으나 가라타니의 이론 자체가 완벽한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반론도 아직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됩니다. 다만 본격문학과 상업문학의 공통분모만은 확실히 가져가야 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들입니다.


 


첫째로, 많이 쓰고 많이 읽으십시오. 글 한 몇 줄 써 보고 나서 칭찬을 바라는 것은 극히 비양심적인 행동입니다. 특히 서사문학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둘째, 이것은 사실 창조도시 내의 사람들에게서 굉장히 많이 보이는 현상입니다만 자신을 아마추어로 설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이미 비주류 선언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주류 문학에 반기를 드는 것은 비주류권의 문학가로서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비주류라고 하여 첫째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글 쓰는 것 또한 기술입니다. 기술은 각고의 노력 끝에 숙달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갈고 닦으십시오. 그리고 제발 비주류 선언을 한 후 그 비주류들 사이에서 주류가 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아마추어의 정신에 대해 논하면서 그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개중의 프로'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