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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문학 (구창도 완결 릴레이) [Tialist] 15~18

2006.11.22 10:30

아란 조회 수:3082

[Tialist] 015 : Aegis, 피어나는 증오
글쓴이 : 아란


‘얘가 카렌티어스? 어쩜 리에를 꼭 빼닮았을까?’

백금발에 허리까지 오는 머리카락에다 연구원들이 입는 흰 가운같은 것을 입은 여자가 블루블랙의 머리카락과 블루블랙의 눈동자를 가진 3살의 소년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헤헤, 그런데 아카라는 누굴 닮은 거야? 티아세리스 머리는 빨갛지 않잖아?’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다듬은 단발의 흰 원피스 차림에 여자가 적색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지닌 3살의 소년을 껴안으며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백금발에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의 표정이 일순 굳어갔다.



두 여자는 자주 만나는 일은 없었지만, 만날 때는 언제나 자신들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
두 소년은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그러나 곧 아이답게 활달하게 놀고, 또는 장난도 치면서 그렇게 지냈다. 가끔 두 소년에 놀이에 두 여자들도 곧잘 끼어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소년이 5살이 되었을 무렵, 두 소년의 어머니는 자주 만나는 시간이 적어져 갔다.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가진 어머니를 쏙 빼닮은 소년은 친구가 언제고 올 때 같이 놀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만큼 소년에게 적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은 유일한 또래 친구였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어느 날, 그렇게 기다리던 친구가 소년에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카라!!’

적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이 하는 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은 간만에 온 친구였기에 반가워 달려나갈 뿐이었다.
적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의 두 눈이 뜨여졌다.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적색의 눈동자.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소년의 두 눈에서 적색의 수정이 돋아났다.

‘아아아악!!!’

달려오던 소년은 이내 자신의 두 눈을 감싸며 그 자리에 엎어져 버린다.
적색의 수정은 깨져버리고, 소년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동화라고 해. 아버지가 그랬어.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고.’

‘아카라...’

‘하나가 되자. 하나가 되면 더 이상 누구도 상처를 입거나 주지 않게 될 꺼야.’

‘어라, 아카라, 언제 왔니...’

블루블랙의 임산부 옷을 입은 여자가 적색의 머리카락의 소년을 보자 반가운 듯 다가왔다.
그러나 여자의 두 눈에 초점은 소년의 적색 눈동자를 보자마자 풀려버렸다. 그리고 곧 그녀의 온 몸에서 적색의 수정들이 마구잡이로 돋아나기 시작했다.

‘아카라!!’

‘아버지의 의지대로 나는 하나로 분리된 모든 의지를 지닌 존재들을 하나로 동화하지 않으면 안돼. 누구도 상처를 주거나 입지 않는 세상. 그것이 아버지의 의지니까. 나라는 존재는 아버지의 의지를 잇기 위한 그릇, 애초에 나란 존재는 어디에도 없는 거야. 하지만, 카렌티어스는 소중한 친구니까, 선택하게 해줄게.’

‘하나가 되겠어? 아니면, 또 다른 의지로서 존재하겠어?’

‘아니면, 사라지겠어?’



“으아아아아!!!”

카렌티어스는 비명을 지르며 냅다 잠에서 깨며 일어났다.

“하아, 하아... 어째서, 꿈에 그 일이...”

카렌티어스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쉬며 푸념같이 내뱉었다.

“내가 그때 무슨 대답을 한 건지 모르겠다. 다만, 이 두 눈이 다시 뜨여졌을 때, 넌 겁을 잔뜩 집어먹고 도망가 버렸지...”



깨져서 산산이 부서져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적색 수정.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지녔던 소년의 머리카락은 어느 샌가 백금색을 띄고 있었다.
뜨여진 소년에 적색 눈동자에 비친 붉은 머리카락의 소년의 눈동자는 어느새 푸른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겁에 질린 소년에 얼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적색 머리카락의 소년은 도망쳤다. 남겨진 소년은 한동안 앞만 보다가 아기에 우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사방에 튄 붉은 피, 그리고 피의 강 가운데에는 배가 찢겨진 남겨진 소년의 어머니가 처참한 몰골로 있었다. 그 주변에는 어머니의 배 밖으로 나와 있는 작은 아기가 있었다.
꺼져가는 듯한 기운으로 울고 있는 아기, 남겨진 백금발의 소년은 자신에게 어느새 심어진 적색의 용안이 이끄는 데로 아기와 어머니를 잇고 있는 탯줄을 두 손으로 끊고 두 눈으로 들어오는 무수한 정보에 구토할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무조건 달렸다.
유 박사가 있을 만한 곳으로.



“아카라... 항상 묻고 싶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나중에 네 어머니인 티아세리스 에르나 씨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시 만나게 된 너는 처음엔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블루블랙으로 머리카락 색을 바꾸더라도 그 눈동자, 탁한 푸른 눈동자는 분명 너란 것을 증명하고 있었지. 10년 만에 보는 나를 엄마라고 불렀었지. 하지만, 그게 다였지. 정말로 나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카라에겐 미안하지만 용안으로 마음을 훔쳐보았지만, 나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느 한 곳은 아무리 용안으로 들여다보려고 해도 전혀 볼 수가 없는 곳이었지. 넌 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때의 기억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나와 너가 얽힌 추억들을 봉인하는 것이니?’

카렌티어스는 곧 고개를 흔들며 다시 잠자리에 들며,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그런 것을 묻기엔 너무 늦은 걸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고 거짓말을 한 뒤, 지금까지 폐륜아란 소리를 수없이 들어왔다.
아버지, 커텔은 그 일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에게 칭찬을 했었다.

‘용을 죽이다니, 칭찬해주어야겠군.’

“비정상적인 세계야. 그래도 좋다. 네가 언제고 돌아올 수 있게 나는 나를 나쁘게 이야기 할 테니까.”

“아카라, 넌 지금 어디 있지?”



“저, 저기 에릭. 있잖아, 맛 어때?”

A-X48(지수)는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무감각하게 먹고 있는 S-X03(에릭)을 바라보며 수줍게 말하였다.

“맛없어.”

“에!!!”

S-X03(에릭)에 단 한마디에 A-X48(지수)는 울상을 지었다.

“농담이고, 실은 무지 맛있어.”

“에릭 군... 지금 절 놀린 거에요!!!!”

이마에 힘줄이 돋은 A-X48은 이내 폭주해서 S-X03(에릭)에게 큼직한 후라이팬을 들고 달려들었고 S-X03(에릭)은 열심히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손에 도시락을 든 체로 달려가면서 식사를 하고 있는 그들에 모습을 보며, 유우키가 한 소리하였다.

“하아, 저 속에서 피어나는 순진한 사랑이란 말인가? 정말 아름답군.”

“한가한 소리할 때가 아닙니다. 행여라도 다치기라도 하면 당장 전투에 투입할 전력이 그만큼 부족해지는데...”

유우키의 말에 대번에 반박하는 카렌티어스에게 유우키는 유유자적, 황홀한 듯한 눈빛으로 반박하였다.

“카렌티어스, 넌 말이야, 지나칠 정도로 커텔 사령관에게 동화되어서 저런 아름다운 커플들에 정다운 사랑 놀음을 볼 줄 몰라, 그런 점에서 참 불쌍하다고 너도.”

“‘만년 솔로’라며 커플지옥 솔로천국을 외치는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카렌티어스에 ‘만년 솔로’라는 말에 유우키는 할말을 잃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이곳 유라시아 나리어스 본부에 눌러앉은 이유가 뭡니까?”

카렌티어스의 조용하지만 뼈가 있는 말에 유우키는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도대체 유우키 대위님은 무슨 생각으로 유라시아 나리어스 본부에 출몰하는 용들을 맡겠다고 지원하신 건지?’

셰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물론 용을 물리치는 것 하나로 결성된 용병단체인 알트 아이젠이었고, 용이 출몰하면 어디든 가서 물리치는 것이 제 1 임무였다. 특정 지역에 출몰하는 용을 물리치는 방어적인 성향이 아니라 용이 있다면 가서 두들기는, 원정 성향이었기에 유우키가 유라시아 나리어스 본부 쪽에 출몰하는 용들을 전부 맡겠다며 지원을 하였을 때 솔직히 그게 받아들여진 것에 의아심을 품는 중이었다.

쿵.

너무 깊이 생각했었던 것이 흠이었는지, 셰나는 앞에 벽이 있는지도 모르고 부딪히고 말았다. 마침 저쪽 복도에서 오던 유 박사는 벽에 부딪혀 기절한 셰나에게 달려가 부축하며 말하였다.

“셰나 씨, 괜찮으세...”

유 박사에 눈이 셰나에 겉에 입은 제복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로켓(안에 사진을 넣을 수 있는 목걸이)에 시선이 갔다. 그것도 뚜껑이 활짝 열려 드러난 사진에 시선이 갔다.
한동안 아무 말 없던 유 박사는 이내 놀라며 입을 열었다.

“어, 어째서, 이것을 셰나 소위가...”

바로 그때 적색경보가 온 건물에 울려 퍼졌다. 용이 출현한 것이다.



“좌표 X 036, Y 048 지점에 용 출현!”

“소라게 타입이지만, 신형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트론 전 기체 각 포인트로 이동 개시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들에 각종 보고, 대형 PDP에 비친 마치 피기 직전에 장미 꽃봉오리를 지고 가는 소라게에 형태를 뛴 용이 비쳤다. 그것에 본채에 색깔은 흙색을 하고 있는 반면, 등에 지고 있는 장미 꽃봉오리 모양은 핏빛을 띄고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작전 지역으로 이동해 오기 시작했다.

“마크 06 시엘은 적의 방어 수단을 찾아내 신형인지를 확인하라.”

카렌티어스에 즉각적인 지시에 B-X49(지나)의 트론인 마크 06 시엘은 클래식 스나이퍼 건
을 지면에 고정시키며 자세를 잡았다.

“포인트 A에서 C지역에서는 마크 03 드로우, 마크 05 이지스, 메가세리움 베타가 상대한다.”

지시대로 포인트 A에서 C지역에 마크 05 이지스를 선두로 좌우로 마크 03 드로우와 메가세리움 베타가 포진을 마쳤다.

“적의 공격 수단이 확인되면, 메가세리움 알파와 마크 02 스카디가 배후에서 적을 공격.”

특별히 위치를 지정해주지 않았지만 유우키의 메가세리움 알파와 SS-X00(유리카)에 마크 02 스카디는 이지스 편대에 배후에 자리를 잡으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 포메이션을 유지할 것.”

카렌티어스에 마지막 한 마디가 끝나고 곧 얼마 안 있어 한 오퍼레이터에 보고가 들어왔다.

“목표, 최종 방어라인 돌파했습니다.”

그 보고를 끝으로 카렌티어스는 즉각 마크 06 시엘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마크 06 시엘, 공격 개시!”

-아, 알겠습니다!!

B-X49(지나)의 트론인 마크 06 시엘은 언제나 그렇듯 그 좋은 눈으로 느리게 이동하는 용을 포착,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경쾌한 소리와 함께 포탄은 그대로 용에게 날아갔고, 무난히 명중하였다. 하지만, 공격이 명중된 용의 반응이 수상했다. 공격이 명중한 순간 꽃봉오리에 보랏빛 빛 덩어리가 모여들고 그 빛 덩어리는 이내 보랏빛 사각형을 만들어 내면서 먼저 공격을 가한 마크 06 시엘에게 빠른 속도로 튕겨 날아갔다. 미처 B-X49(지나)가 시엘을 움직여 피해볼 틈도 없이 보랏빛 사각형은 클래식 스나이퍼 건과 그것을 쥐고 있는 시엘에 두 손, 두팔을 연달아 관통하며 트론 자체를 비틀어버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파일럿 캡슐 사출!!”

B-X49(지나)는 두 손, 아니 온 몸을 비틀어 짜는 막대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역시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는 카렌티어스는 즉각 비틀어져 가는 트론 마크 06 시엘에게서 파일럿 캡슐을 즉각 사출시켰다.

펑.

파일럿 캡슐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사출됨과 동시에 마크 06 시엘을 관통한 보랏빛 사각형 역시 사라져 나갔다. 그러나 두 팔, 두 손, 무릎이 비틀어진 시엘은 그대로 자세로 인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용은 한층 더 속도를 내어 단숨에 이지스들이 포진한 포인트 A~C지역에 도달했다.

“마크 05 이지스는 후퇴, 메가세리움 베타와 마크 03 드로우로 거리를 벌어나가며 양측면에서 공격!!”

카렌티어스에 즉각적인 지시에 이지스는 뒤로 후퇴함과 동시에 셰나의 메가세리움 베타와 A-X48(지수)의 마크 03 드로우는 용에 양측면으로 각각 이동하면서 메가세리움 베타는 왼팔에 내장된 기관포 갈룸 14를 쏘아대었고, 마크 03 드로우는 트라이건을 양손에 쥔 채 쏘아대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용은 특별한 공격을 하지 않은 채로, 마크 06 시엘에게 한 것처럼 자신을 공격한 트론에게 보랏빛 사각형을 튕겨 낼 뿐이었다. 보랏빛 사각형은 메가세리움 베타에 왼팔을 관통하며 비틀어나갔으나 셰나는 즉각 고통을 참으며 단숨에 오른팔에 듀거 란스로 왼팔을 잘라내었다. 그러나 드로우 쪽으로 날아간 보랏빛 사각형은 드로우에 양팔을 관통하며 꽈배기처럼 비틀어버리며 A-X48(지수)에게 막대한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뭐, 뭐야!! 으아아아아아아악!!!!

카렌티어스 역시 예상치 못한 고통에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마크 03 드로우에 상태를 살펴보며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폐인 블록이 작동하지 않아? 그렇다는 말은 데이터 상으로는 어디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뜻인가?”

트론이 상처를 입으면 그 파일럿도 역시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그 고통도 일시적일 뿐, 곧 사라져버리는 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폐인 블록, 폐인 블록에 역할은 트론이 상처를 입은 부분에 파일럿과 연결된 감각 센서를 자동적으로 끊어버리는 장치이다. 이 장치로 인해 트론의 파일럿은 일시적인 고통을 느낄 뿐, 계속적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폐인 블록이 작동된 시점에서는 이미 상처를 입은 부위가 잘려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상 트론의 신체 일부분이 잘려 나가면 일시적인 고통을 느낄 뿐 곧 페인 블록이 작동해 지속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틀어져 버렸다면 당연히 폐인 블록이 작동해야 함에도 작동하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품는 카렌티어스였으나 곧 생각을 바꾸어 셰나에 메가세리움 베타에 즉각 연락을 취하였다.

“셰나 소위님!!”

-알고 있다!!

단숨에 셰나에 메가세리움 베타는 단숨에 마크 03 드로우에 비틀어진 양팔을 듀거 란스로 절단해 버렸다.

-아아아아악!!!

A-X48(지수)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정신을 잃은 채로 드로우와 함께 앞으로 엎어졌다.

“됐다, 폐인 블록이 작동.”

카렌티어스는 마크 03 드로우에 데이터를 보며 말하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적은 우리의 공격을 그저 되받아쳐오는 것뿐인가? 만약 그렇다면...’

카렌티어스에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용은 다시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렌티어스도 역시 지시를 내렸다.

“마크 05 이지스는 이지스 쉴드로 용을 붙잡아 둔다!!”

-이미 가고 있다고!

S-X03(에릭)은 힘찬 목소리와 함께 이지스 쉴드 전개와 동시에 엔리멘탈 코드, 쉴드까지 발동하며 전진하는 용에게 정면으로 부딪쳤다. 다행이도 이지스 쉴드나 엔리멘탈 코드로 발동된 쉴드까지는 공격으로 보지 않는 듯 용에게서 보랏빛 사각형이 튕겨져 나오지는 않았다.

“역시, 좋아. 마크 02 스카디는 그대로 적의 뒤로 돌아가 눌러버리도록!!”

-아니, 눌러버리지 않고 스카디로 흡수해버리겠어!!

유리카는 역시 힘차게 소리치며 오른손에 동화시킨 듀거 란스를 단 스카디를 잽싸게 움직여 이지스가 붙잡아 두고 있는 용에 뒤로 가 용에 핏빛 장미 꽃봉오리를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콰앙.

“유리카!!”

카렌티어스에 단말마와 같은 비명소리, 내려친 스카디에 왼팔을 중심으로 그대로 스카디에 온 몸을 관통하며 비틀어대고 있는 보랏빛 사각형이 보였다. 그 사각형은 곧 사라졌고, 스카디 역시 자체 재생능력으로 곧 원형 그대로 재생되었다. 그러나 스카디는 그대로 뒤로 쿵 주저앉았다.

-아...

유리카는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고통으로 왠만한 고통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만큼 고통에는 면역이 되어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방금 겪은 고통의 수준은, 지금까지 겪어 본 바 없는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살면서 겪은 모든 고통을 일시에 느끼게 된 거랄까? 팔 하나, 다리 하나, 머리 하나 날라가는 정도의 고통이라면 무시할 수 있어도 살면서 겪은 모든 고통을 그 순간에 일시에 겪는다면 아무리 유리카라도 비명 하나 못 지르고 쓰러져 버릴 것이다.

쿵.

갑자기 용이 땅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등에 지고 있던 핏빛 장미 꽃봉오리가 벌어지면서 그 안에서 마치 혈관과도 같은 그러나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핏빛 촉수들이 무수히 많이 나오며 땅을, 그리고 땅위에 모든 것을 뒤덮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땅위에 널 부러진 트론들도 뒤덮었지만, 트론이 뒤덮이던 말던 상관없이 그대로 땅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적이 본부 지하 시설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적, C-블록에 도달!”

“뭣!!!”

오퍼레이터들에 보고에 커텔은 자신도 모르게 한 소리를 내뱉었다.
C-블록, 바로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타워가 위치한 공간.
본부 지하에 사방 50m라는 넓은 공간 중앙에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타워가 있다.
정확히는 공간에 중심에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이 위치하며,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탑승하는 구조였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타워를 중심으로 전후좌우에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보도블록이 있으며 나머지는 정체 모를 청색의 액체가 호수처럼 채워져 있었다. 그런 곳 C-블록에 핏빛에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혈관 같은 용의 촉수 수십 가닥이 천장을 뚫고 내려오며 단숨에 중앙에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타워를 꽁꽁 동여매듯 감싸기 시작했다.

“설마, 처음부터 시스템을 빼앗을 셈으로...!”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빼앗긴다는 것은, 시스템에 연결된 트론의 코어에 제어라던가 D.C.S의 컨트롤을 용에게 빼앗긴다는 것이었다. 용에게 빼앗긴다면 분명, 시스템에 연결된 트론 전기체가 용에게 동화당하거나 또는 폭주하거나 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지휘 계통이 혼란해져 아군의 트론이 제대로 작전대로 싸우지 못할 것이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동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커텔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적의 본체를 뿌리와 끊어라!”

아무리 중대한 일에도 함부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는 일이 없는 커텔이 갑작스레 일어나 소리치며 명령하자, 본부 내에 사람들은 커텔에 그런 모습에 잠깐 멈칫했으나 곧 자신들에게 주어진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대형 PDP에서는 유우키의 트론 메가세리움 알파가 용에 본체에서 나온 촉수를 연신 공격해대었으나, 곧 바로 촉수들에 감겨 사지가 절단 나고 두동강 나버렸다.

-이 녀석!!!

S-X03(에릭)의 트론 마크 05 이지스만이 현재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트론이었다.
(유리카는 순간적인 쇼크로 일시적인 마비 상태)
S-X03(에릭)은 열을 내며 이지스 쉴드에 강도를 높임과 동시에 엔리멘탈 코드 쉴드 역시 강화하면서 용의 본체를 밀어내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은 교활했다. 이지스 쉴드와 엔리멘탈 코드로 발동된 쉴드가 미칠 수 없는 지하를 통해 촉수를 움직여 쉴드 내부로 나오게 함과 동시에 이지스 곳곳을 찔러대었다.

-으아아악!!!

고통으로 인해 엔리멘탈 코드와 이지스 쉴드가 잠시 해제되자마자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 이지스 곳곳을 관통해 되었다.

-큭!!

고통에 이를 악무는 S-X03(에릭)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용의 본체 뒤에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뻗은 채로 빛나는 듀거 란스였다.

-카렌티어스... 유리카에게 손을... 꺽어달라... 고...

카렌티어스는 시스템의 방어 와중에 들려온 S-X03(에릭)에 고통을 참으며 하는 말을 듣고 곧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눈치를 채고 유리카에게 말하였다.

“유리카!!”

-... 오, 오빠...

“손만이라도 움직일 수 있겠니?”

-으, 응...

유리카는 카렌티어스에 말에 겨우 손만이라도 움직이려고 생각했다.
듀거 란스가 동화된 오른손을 왼손으로 움직여 듀거 란스에 위치를 좀 더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듀거 란스에 바뀐 위치를 본 S-X03(에릭)은 결의에 찬 눈동자로 외치며 이지스를 움직였다.

-누구도 다치지 않아!! 난 방패(Aegis), 그러니까, 내가, 내가 모두를 지켜줄 테야!!!

그대로 이지스는 (이지스의 스펙으로는 믿을 수 없지만)용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지스의 손가락은 모두 잘려나가고, 이지스의 장갑에 금이 가거나 떨어져 나가고, 이지스 기체 자체에는 용이 튕겨낸 보랏빛 사각형들이 마구잡이로 관통해 팔, 다리 할 것 없이 비틀린 상태였다.

-으아아아아아!!!!

그러나 S-X03(에릭)은 그 고통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로 무너지기 직전에 이지스로 단숨에 용에 본체를 스카디에 듀거 란스에 냅다 관통시켰다. 그러나 듀거 란스가 너무 길었기에 용에 코어뿐만 아니라 이지스에 허리 역시 관통해 버렸고, 그대로 이지스는 두 동강 나버렸다.

“파일럿 캡슐 사출!!”

카렌티어스의 외침과 동시에 이지스의 파일럿 캡슐은 사출되어 저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듀거 란스에 관통된 용의 코어도 빛을 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늦지마.’

카렌티어스의 바람과는 달리, 이지스의 파일럿 캡슐은 폭발 사정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콰아앙.

폭발은 곧 사그라들었고,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았다.
용의 코어가 폭발한 곳을 중심으로 지름 40m 가량 이르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그 곳에는 어느새 재생된 스카디가 뒤로 나자빠져 있었다. 스카디의 오른손에 있던 듀거 란스는 손잡이만 남았을 뿐, 칼날은 없었다. 폭발의 중심지 어디에도 이지스의 잔해는 없었다. 구덩이 주변에는 사지가 절단 나고, 두동강 난 메가세리움 알파가, 그리고 왼팔만 절단 난 메가세리움 베타가 두 팔이 잘린 채 앞으로 고꾸라진 마크 03 드로우를 부축해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아, 윽...

정신을 차린 A-X48(지수)에 두 눈에 으스러진 이지스의 파일럿 캡슐이 들어왔다.
으스러진 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이지스의 파일럿 캡슐을 보며 그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 눈에선 맑은 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입에서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아... 으아아아악!!!



“목표 소멸.”

“이지스 역시 폭발에 휘말려 소멸되었습니다.”

“여전히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과 동화중인 용의 촉수는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시스템을 동화하고 있습니다만, 관리자님의 적극적인 방어로 일부만 동화된 상태지만, 이대로라면...”

오퍼레이터들의 보고에 커텔은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뭐든 쉽게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커텔이었다.

-유 박사님.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실래요.

“유리카,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쇼크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몸으로는 무리야!!”

-그치만, 이대로 있으면 오빠는, 위험해요. 그러니까,

“1번부터 C30번 블록을 전면 개방한다.”

유 박사과 단말기로 유리카와 하는 대화를 들었는지 커텔은 입을 열며 지시했다.

“당신!!”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용에게 빼앗기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시스템의 설계자라면 당연히 잘 알고 있겠지.”



“지수 언니, 괜찮아요...”

Cage에 파일럿 대기실에서 B-X49(지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A-X48(지수)를 걱정하며 말하였다.

“괜찮아. 신경 쓸 거 없어.”

“그치만...”

A-X48은 벌떡 일어나 거울 쪽으로 향하며 말하였다.

“지나가 걱정할 것 없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갑자기 A-X48(지수)는 벽에 거울을 향해 냅다 주먹을 날렸다.
거울은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지면서 붉은 피와 파편이 튀었다.
B-X49(지나)는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B-X49(지나)에게 A-X48(지수)는 조용하지만 그러나 살의와 증오가 담긴 말을 하였다.

“처음엔 그저 살기 위해, 명령이기 때문에 용과 싸워 왔지만, 이젠 용과 싸워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알겠어.”

“소모품 취급을 받든 이제 상관 안 해. 용만, 용만 전부 전멸 시킬 수만 있다면, 난 어떻게 되어도 좋아. 에릭을 앗아간 용을 전부 죽여 버릴 수만 있다면...”

한 소녀의 마음속에서 새로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증오와 분노였다.



“알파 섹터부터 세타 섹터까지 X032번 방법을, 그리고 나머지 제타 섹터, 베타 섹터와 에타 14번 구역은 C-392번 방법으로 방어 개시.”

카렌티어스는 능수능란하게 시스템을 조작하며 보통 어른이라면 멀미로 졸도해버렸을지도 모를 방대한 작업을 단 10분 만에 완료를 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방법에 효과는 바로 시스템 상태 창에 보여 졌다.

“됐다. 성공이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30시간은 버틸 수 있다.”

‘순순히 용에게 시스템을 빼앗기지는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막아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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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alist] 016 : 인간의 정의, 티아리스트
글쓴이 : 아란


“바이오 그래프가 조금 이상한데요?”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노 박사를 보며 말하였다.
노태우, 즉 노 박사는 유리창 너머 은회색의 트론의 두부를 보며 깊게 한숨을 쉬며 당연하다는 듯 말하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원래 보통의 인간이 트론과의 동조율이 높을 턱이 없는데, 그 모자라는 동조율을 올리기 위해 약물까지 투여했으니, 바이오 그래프가 정상인 게 더 이상하지... 바보 손녀 같으니...”

노 박사는 한 숨을 쉬었다.
노 박사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딸은 자신을 닮은 여자 아이를 낳았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행복스토리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 평범한 행복. 하지만, 그것도 손녀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용들의 공격. 그리고 딸 부부는 그렇게 짧은 행복과 고해야 했다. 남겨진 아이는 용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품은 채, 그렇게 노 박사와 살아왔다. 노 박사가 용을 죽이기 위한 병기를 개발한다는 것을 알지 못 했다면, 그녀가 약까지 투여 받으며 노 박사가 개발한 한국 최신예 트론, ‘K05 김치’를 탈일은 없을 것이다.

“소라야. 정말 괜찮겠냐?”

-문제없어요. 언제든지 OK이에요. 할아버지.

“그러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 하거라.”

노 박사는 손녀인 유 소라와의 통신을 끊은 뒤,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연구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K05 김치의 최종 테스트를 개시하게.”

노 박사의 지시에 각 연구원들은 자신들에 맡은 임무를 이행하며 각종 보고를 쉴 새 없이 하고 있었다.

-크크크... 이것이 인간들이 우리를 쓰러뜨린다고 만든 장난감이란 말인가? 참 재미있는 장난감이군.

김치의 테스트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김치에서 소라의 목소리가 아닌 괴기스런 목소리가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에 노 박사는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며 급하게 소리쳤다.

“당장 테스트 중지!! 어서 코어에 활성화를 중단하게!!”

“지, 지금 하고 있습니다.”

연구원들은 당황했지만, 자신이 할 일을 하였다. 하지만 각 연구원들이 조작하고 있는 정보를 보여주는 모니터에는 -All Code Access Denial-라는 붉은 문자가 화면에 뜰 뿐이었다.

“틀렸습니다!! 전 코드 액세스 불가!!! K05 김치, 제어를 완전히 뺏겼습니다!!”

-크오오오.

때마침 김치는 흡사 괴수의 울부짖음을 내뱉으며 김치를 구속하고 있는 시설들을 순식간에 부숴버리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난동을 부리는 은회색의 트론, 김치를 보며 노 박사는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이, 이 놈의 용이, 내가 개발한 트론을... 하나뿐인 손녀를...”

“노 박사님!! 어서 피하세요!!”

그 순간 김치의 은회색 장갑이 밝게 빛나더니 이내 그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콰쾅



=그 시각 유라시아 나리어스 본부=

“여전히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과 통신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와 정면에 대형PDP에 비친 핏빛 촉수에 잔뜩 둘러쌓인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타워와 그것을 둘러싼 용에 촉수를 세심하게 역동화 흡수해 처리해 나가는 트론 마크 02 스카디의 모습이 보였다.

“스카디가 작전에 들어간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전투 종결 후 바로 작전에 들어간 지 19시간 정도 경과했습니다만, 별 진전은 없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커텔은 내심 속으로 대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타워를 감싼 용의 촉수에 달린 또 다른 코어는 이미 포착했으나, 카렌티어스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에 함부로 코어를 제거할 수도 없으며, 스카디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동화, 흡수해 버릴 경우, 자칫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동화 흡수해버릴 위험이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있는 카렌티어스의 목숨 역시,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과의 마지막 통신에서 카렌티어스는 용에 시스템 동화 침식 상태가 68%라고 했다. 그 통신 이후로 카렌티어스와의 연락이 7시간이나 끊긴 상태이다. 카렌티어스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 현재로서는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말은 아직 카렌티어스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오빠, 조금만 참아. 유리카가 곧 꺼내줄게.

유리카도 조급하긴 조급했다. 하지만, 서두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용은 영악하게도 자신들의 유리한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스카디가 유리카의 의지대로 용의 촉수 한 다발을 동화 흡수하면 그 배로 촉수 다발을 재생시켜 스카디의 양손을 뒤덮어 버리는 것이었다.

“포인트 A부터 D영역에서 용 출몰!!”

“헬 하운드와 유사하지만 변종으로 판명. 개체 수 15마리입니다.”

오퍼레이터들의 급작스런 보고와 함께, 대형 PDP에는 어느 새 화면이 바뀌어 변종 헬하운드 15마리와 자동 방어에 들어간 미사일 센터에 격전을 보여주고 있었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쓸 수 없는 상황인데 어쩔 거죠, 커텔 사령관님.”

유 박사의 진지한 말에 커텔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쓸 수 없다면, 마더 컴퓨터로 제어하면 되겠지. 당연한 것을 묻는 군.”

그때 커텔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커텔 사령관님,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트론을 잠시 빌릴 수 있겠습니까?

“그건 왜인가?”

-알다시피, 아까 전투로 제 기체인 메가세리움 알파가 못쓰게 되어버렸잖습니까. 이번 전투에 한해서 빌려주실 수 있을 런지요.

“미완성에 ‘마크 07 그레이’라도 좋다면 맘대로 하게.”

- 아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이 전투에 지휘권 제게 주실 수 있습니까? 줄 수 없더라도 적어도 지수 군은 빼주셨으면 합니다만.



“유우키 대위님.”

A-X48(지수)는 회색의 트론, 마크 07 그레이에 탑승할 준비를 하는 유우키를 노려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어, 지수 군이잖아.”

“여어가 아니잖아요. 어째서, 절 출격시키지 않기로 한 거죠.”

A-X48(지수)에 말에 유우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지금, 네 상태로는 딱, 폭주해서 날뛰다 죽기 좋은 상태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용들을 다 죽여버리면, 죽을 일은 없잖아요.”

“아직 어리군. 너도 알겠지만, 현 시점에선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의 보조를 받을 수 없어. 불안하긴 하지만, 트론의 코어에 제어를 임시로 마더 컴이 대행하게 되겠지만, 카렌티어스가 하는 만큼의 반도 겨우 따라가는 수준이라서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제일 폭주할 위험이 있는 지수는 빠질 수밖에 없어.”

“그딴 거 상관없어요!! 용들을 다 잡아 죽일 수 있으면 폭주하던 뭐던 그딴 거 상관없단 말이에요!!!”

유우키는 A-X48(지수)의 말에 냉큼 오른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A-X48(지수)의 얼굴에 휘둘렀다.

짝.

난데없이 유우키에게 뺨을 얻어맞은 A-X48(지수)는 멍한 눈으로 유우키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렇게 멋대로 폭주해서 유리카가 너를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동료를 죽일 참이냐?”

“아...”

“너 혼자 싸우는 거면, 네가 미쳐 날뛰던 말던 그건 상관없는 일이야.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혼자서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적은 교활하고, 또 숫자도 많아. 하지만, 요격에 나설 수 있는 아군의 숫자는 별로 없어. 그 적은 숫자로 적과 싸워 이기려면 팀웍이 잘 맞아야 하지. 또한 작전 지시를 이성적으로 잘 이행해야 해. 무엇보다도 너희들이 타는 트론이 폭주하는 것을 막아주던 카렌티어스의 도움은 지금으로선 전혀 받을 수 없다. 아무리 마더 컴이라도 카렌티어스가 하는 것만큼은 못해. 우린 폭주 위험을 감안하면서 서로를 믿고 싸워야 하는 거다!”

“으흑...”

A-X48(지수)는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울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증오와 분노로 휩싸인 자신이 정작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니, 오히려 소중한 친구들을 자기 손으로 죽일 지도 모른다는 것에 너무도 분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배려해주는 유우키가 또한 고마웠다.

“지수 넌, 들어가 쉬고 있도록 해. 나랑 셰나, 그리고 지나가 나가서 싸우고 올 거니까. 물론, 네가 아끼는 지나란 애가 죽지 않게 할 거야.”

유우키는 하염없이 울고 있는 A-X48(지수)를 뒤로 하고 회색의 트론, 마크 07 그레이에 파일럿 캡슐에 탑승하였고, 곧 파일럿 캡슐은 마크 07 그레이에 삽입되었다.

“메가세리움에 비해서, 그리 썩 나쁘진 않군. 좋아. 충분히 싸울 수 있겠어.”



대형 PDP에는 변종 헬하운드를 7마리째 격파하고 있는 트론 마크 07 그레이(시라카와 유우키)와 이전 전투에서 왼팔을 잃은 메가세리움 베타(셰나)와 원거리에서 지원 사격을 하는 마크 03 드로우(B-X49, 지나)에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지나, 마크 03 드로우는 어떠니?”

유 박사가 보낸 통신에 B-X49(지나)는 대답하였다.

-제가 타던 것하고 별로 다르지 않네요.

“조금 불편해도 참아. 어쩔 수 없다고. 마크 06 시엘은 아까 전투로 반파되어서 말이지.”

-알고 있어요. 어차피 제 역할은 원거리 지원 사격이니까, 시엘이든 드로우든 별로 상관이 없잖아요. 그것보다, 카렌티어스를 구하는 건 잘 되가나요?

“진전이 없어. 그럼 이만 끊지.”

유 박사는 그렇게 통신을 마친 뒤, 마더 컴퓨터에서 보내주는 불안한 데이터들을 보며 연신 10여명에 요원들과 함께 일일이 데이터들을 조작하고 있었다. 15살의 소년이 혼자서 하는 일들을 유 박사를 포함한 11명의 어른이, 마더 컴퓨터라는 슈퍼컴퓨터로 겨우 트론의 폭주를 막고 있는 거였다. 그것도 셰나의 메가세리움 베타를 제외한 2기의 트론의 폭주만 막고 있는 것이라 이 정도의 인원으로 제어가 가능한 것이었다.
(메가세리움은 애초에 양산형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거의 폭주할 가능성이 0%에 달한다.)

“남동쪽 1.7km에서 미확인 기체 포착. 마하 7의 속도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포인트 C 좌표 X 012 Y 054에 착지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대형 PDP에는 어느 새 착지한 은회색의 트론의 모습을 비쳐주고 있었다.

-유 박사님, 제 눈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면, 저거 트론이 맞겠지요?

유 박사는 유우키의 통신에 대답하였다.

“유우키 대위, 미확인 트론과 통신을 시도해 봤지만, 통신이 전혀 되지 않고 있어.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유 박사님, 이건 제 감입니다만, 저건 왠지 적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크오오오오오.

갑자기 은회색의 트론이 괴성을 지르며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은회색 트론의 장갑 외부에는 황금빛 빛들이 얇은 막을 이루며 빛나기 시작했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타워를 감싸고 있는 용의 촉수 급속 성장합니다!!”

“용의 촉수가 메인 블록으로 침투합니다!!”

“1번, 4번, 17번 미사일 센터 컨트롤이 안 됩니다!!”

각 오퍼레이터들은 급박하게 여기저기서 보고를 날리기 시작했다.
대형 PDP에는 어느 새 C-블록을 비추고 있었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감싸고 있던 용의 촉수가 급속히 성장해 곳곳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이,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스카디의 모습도 비쳐졌다.

‘용들은 본부의 시스템을 아주 통째로 빼앗을 작정인가?’

“파일럿들에게 당장 저 은회색 트론을 제거하라고 하라!! 이 시점부터 저 트론은 트론이 아니라 용으로 간주한다.”

탁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명령을 내리는 커텔에게 전용 회선으로 통신이 들어왔다.

-커텔 사령관, 제발 늦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 유라시아 지부에 은회색 트론이 오지 않았나?

“왔습니다.”

-아직 파괴하지는 않았겠지. 돌려 말하지 않겠네. K05 김치를 생포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네. 제발 내 손녀만이라도 구해주게. 커텔 사령관.

“아무리 노 박사님이라도, 공과 사는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조언해주지. 김치에 특수능력 중 하나인 임펄스 쉴드를 조심하게. 쉴드긴 하지만, 공격적인 원형 쉴드지. 에너지를 임계점까지 끌어 모아 그 에너지를 폭발시켜 사방으로 방출하는 거지. 그 위력은 트론이 자폭하는 것보다 약간 못한 파괴력이라고 보면 되네. 사정거리는 아직 시범적으로 적용한 거라 트론 3대가 동시에 휘말릴 정도라고 보면 되네.

-할 수 있다면, 손녀를 구하기 위한 노력만이라도 해주게.



카렌티어스 주위에 모니터에 창들이 막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 카렌티어스를 머리를 쑤시는 듯한 통증과 원하지 않는 정보들이 마구 들어 닥치기 시작했다.

“이건 크로싱... 기체 코드... K05 김치... 란 말인가?”

카렌티어스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어떻게 시스템을 제어해보려고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보려고 하였다. 이미 용에게 98% 빼앗긴 시스템, 사실상 용에게 트론의 제어를 빼앗긴 거나 다름없었지만,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은 메인 블록의 시스템과도 연결되어 있었기에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빼앗은 용이 본부의 시스템을 빼앗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카렌티어스의 우려대로 모니터에는 본부의 시스템을 마구 컨트롤 액세스 하는 창들이 떴다 닫혔다를 반복하였다.

“제길, 네 녀석들 마음대로 하게 내가 내버려 둘 줄 아나!!”

카렌티어스는 용안을 사용해 시스템을 다시금 제어하려고 했지만, 그때 모니터의 틈새에서 용의 핏빛의 가시 달린 촉수들이 카렌티어스를 둘둘 감싸기 시작했다.(머리 빼고)

“큭...”

「크크크, 시스템이 무척 흥미롭더군. 이런 시스템을 고작 인간 꼬마가 혼자서 다 처리한다니, 크크크, 그래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네가 지키고 있는 것을 네 손으로 파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 것이야.」

“무슨 짓을... 큭... 서, 설마 네 녀석들!!”



트론 마크 03 드로우는 쏴야 하는 목표인 K05 김치가 아니라 셰나의 트론인 메가세리움 베타를 향해 클래식 스나이퍼 건을 쏴버렸다.

핑.

드로우의 공격을 간발에 차로 피한 메가세리움 베타는 한 건물 구조물 뒤로 후퇴하였다. 그리고 유우키는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나!! 무슨 짓이야 아군을... 큭...

순간 유우키는 자신을 엄청나게 위압적인 기운이 자신이 동조한 트론을 맘대로 하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 이건 크로싱인가?’

“쳇, 시스템이, 완전히 용에게... 넘어간... 거란 말인가?”

유우키는 멋대로 움직이려는 그레이를 겨우겨우 붙들어 매며 한발자국 움직이며 말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난 네 녀석들에게 멋대로 조종당하진 않아!!”

그대로 그레이는 김치에게 달려들어 나이트 하르트를 박아 넣었다. 곧 김치 주위에 황금빛 에너지가 모이더니 사방으로 폭발하듯 내뿜어졌다.



“오빠!! 오빠!! 괜찮... 아악!!!”

유리카 역시 용에 강제 크로싱에서 무사할 수 없었다.
스카디는 유리카의 심경을 대변하듯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마구 날뛰었다.



“본부의 시스템 제어가 완전히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에 빼앗겨 버렸습니다!!”

“본부 자폭 카운터 들어갔습니다!! 핵미사일 발사 카운터에 들어갔습니다!!”

“변종 헬 하운드, 본부 내로 침입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개채 수 3마리입니다!!”

“방어 시스템과 격벽들이 헬 하운드들의 침입을 돕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오퍼레이터들의 보고, 그러나 오퍼레이터들은 보고만 할 뿐, 어떻게 이 사태를 막아 볼 힘이 없었다. 대형 PDP에는 붉은 글자로 자폭 카운터가 5분 남았다는 것과 핵미사일 발사 카운터가 4분 남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거, 이거 정말 최악의 상황이군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할 생각인가요? 커텔 사령관님?”

갑자기 들려온 한 여자의 목소리에 커텔은 잠시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본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상의 조금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여성용 정장을 입고 지적이게 보이는 안경을 쓰고 짧은 핑크빛 머리카락을 올려 묶은 여자가 있었다.

“‘슈리엘 클레이즈’입니다. 뭐, 클레이즈 박사라고 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클레이즈 박사인가? 어째서, 이곳에 온 거지?”

“원래대로라면, 연구 겸, 그에 몸의 상태를 검사할 겸해서 왔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찾는 게 먼저 일 것 같군요.”

그때 유 박사가 ‘슈리엘 클레이즈’ 라 자신을 밝힌 여자에게 다가가며 말하였다.

“클레이즈 박사는 방법이 있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아, 유 박사님도 계셨군요. 일단 그 질문에 대해서는 제 분야가 아니라서 뭐라 할 말은 없군요. 그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카렌티어스 군을 믿어보라고 밖에...”

대형 PDP에 화면은 여러개로 분할되어서 침입한 3마리의 변종 헬 하운드에게 저항하는 병사들이 무참히 살해되는 것과, 마크 03 드로우와 김치의 임펄스 쉴드에 당해 엉망이 된 마크 07 그레이가 메가세리움 베타를 노리며 공격하는 것과 그것을 열심히 피하는 메가세리움 베타의 모습, C-블록에서 여전히 머리를 쥐어 잡고 날뛰는 스카디와 덕분에 부서져 가는 시설들의 모습, 급속 성장한 가시 달린 용의 핏빛 촉수가 사람들을 마구 살해하는 모습 등을...

그리고 그러한 모든 정보는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의 모니터에도 분할되어 보여 지고 있었다.

「크크크... 어떠냐, 인간이여, 재미있지 않나?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네 손으로 직접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네가 그렇게 멋대로 날뛰지 않게 손을 쓰던 저 장난감들이 서로를 부수고 날뛰고 하는 모습, 인간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장난감들이 정작 보호받길 원하는 인간을 학살하는 모습, 재미있지 않나?」

“...”

시스템 내에 울려퍼지는 용의 말, 용의 촉수에 휘감겨 피투성이가 된 카렌티어스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뭐라 말을 해보지 그래? 설마 벌써 죽은 거냐? 죽지 않게 적당히 촉수로 감싼 것 뿐인데, 벌써 죽으면 앞으로 더 재미있는 것을 못 볼 텐데?」

“... 아직 죽지 않아...”

「그래, 역시 죽지 않았을 줄 알고 있었지. 그 쓰레기 龍眼(용안)으로 더더욱 재미있는 것을 봐야지. 앞으로 더욱 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질 텐데 말이야!!」

“... 쓰레기 용안이 아니야...”

「쓰레기가 아니면, 훗, 하긴 인간의 입장에선 쓰레기가 아니겠지만, 너희들이 용이라 표현하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자기 눈조차 간수하지 못해 인간 따위에게 동화흡수당하는 녀석은 쓰레기 용이나 다름없는 거다!!」

“쓰레기는...”

카렌티어스의 두 눈이 감겼다. 그리고 다시 두 눈을 뜨며 소리쳤다.

“... 바로 너다!!”

카렌티어스의 용안은 이전에 적색과는 전혀 다른 타오르는 불길과도 같은 핏빛의 적색을 띄고 있었다. 시야에 비치는 모든 것은 다 태워버리겠다는 듯한 핏빛의 적색.
카렌티어스와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감싸며 그리고 메인블록과 본부 시스템 곳곳에 침투했던 용의 핏빛 촉수가 소멸해가기 시작했다. 김치는 순간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으며, 멋대로 움직이던 마크 03 드로우와 마크 07 그레이, 마크 02 스카디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 어째서... 이, 인간 따위가... 티, 티아리스트님의 3개의 용안 중, 하, 하나인... 발로르의 死眼(사안)을...」

“... 아카라가... 내게 준... 소중한... 눈이야...”



“자폭 코드가 해제 됩니다!!”

“핵미사일 발사 카운터가 중지되었습니다!!”

“방어 시스템, 독자적으로 침입해 오는 변종 헬 하운드 3마리를 요격합니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둘러싸고 있던 용의 코어 소멸 확인!! 용의 촉수들이 잇따라 소멸합니다!!”

오퍼레이터들의 잇따른 보고에 커텔의 얼굴에 조금 혈색이 돌아왔다.
그리고 대형 PDP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아마도, 그의 용안이 완전히 개방되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커텔이 한 말에 갈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클레이즈 박사가 대형 PDP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시스템이 컨트롤을 거부합니다!!”

“모든 시스템이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통해 제어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들의 보고에 클레이즈 박사는 싱긋 웃으며 말하였다.

“개방이 아니라, 각성일지도.”



3마리의 변종 헬 하운드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침입을 도와주던 방어 시스템들의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발걸음을 C-블록으로 서두르기 시작했다. 단숨에 방어 시스템과 격벽을 부숴버리며 C-블록으로 향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콘크리트를 동화흡수하여 마치 칼처럼 양손에 달고 있는 검붉은 색의 트론, 마크 02 스카디였다. 그리고 스카디에서 유리카의 으스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빠를 어떻게 해 볼 생각으로 왔겠지. 안됐지만, 오빠를 건드리게 놔두지 않아. 다 죽었어!!”

그리고 순식간에 스카디가 휘두른 칼같은 콘크리트에 의해 으스러지고 터지며 고깃덩이가 되어 폭발하는 3마리의 변종 헬 하운드들이었다.



“아깐 잘도 나를 멋대로 했겠다. 가만 놔두지 않겠다!! 이 망할 용아!!”

용의 강제 크로싱에서 벗어난 마크 07 그레이의 임시 파일럿인 유우키는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근처에 무기고에서 자동적으로 배출된 나이트 하르트의 레이저 광을 개방시키며 김치에게 달려들었다.

-마크 07 그레이, 아직 K05 김치에 파일럿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오, 카렌티어스냐? 무사했구만. 시스템을 되찾은 건 너겠지.”

-잡담할 시간은 없습니다. 적은 곧 이곳을 벗어나려고 할 것입니다. 제가 강제로 용에 크로싱을 걸어 행동을 봉쇄하겠습니다. 그 틈에 파일럿 캡슐을 회수함과 동시에 제가 김치에 D.C.S(Disintegrate Core System)를 가동시키겠습니다. 그레이에 엄호는 마크 03 드로우와 메가세리움 베타가 합니다. 마크 07 그레이는 파일럿 캡슐을 회수 하십시요. 김치의 특수능력인 임펄스 쉴드를 주의 하십시요.

“에라이, 카렌티어스 이녀석, 어른을 마구 부려먹냐!! 뭐 어쨌든 파일럿이 살아 있다는 이야긴 첨 듣는 거고, 임펄스 쉴드라면 아까의 그 공격 같고, 날 우습게보지 말라고. 그깟 사람 하나 구하는 거 뭐 어렵다고! 그것보다 견딜 수 있겠냐!! 크로싱을 하면 확실하게 고통이 전달될 텐데!!”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작전 이행하십시요.

“좋다!! 나중에 겁나 아팠다고 투정 부리기만 해봐라!! 엉덩이 10대 때려주마!!”

순식간의 마크 07 그레이는 김치에게 빠르게 접근해 가기 시작했다.
김치는 도망을 가려고 했지만, 카렌티어스가 강제로 크로싱해서 행동을 봉쇄한 탓인지,
힘들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마저도, 마크 03 드로우의 저격으로 왼쪽 다리가 날아가 버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느 새 도착한 마크 07 그레이는 김치의 등 쪽에 파일럿 캡슐이 삽입된 곳을 강제로 손으로 열어 파일럿 캡슐을 회수하였다. 그런 마크 07 그레이를 공격하려는 김치의 오른 팔을 메가세리움 베타가 듀거 란스로 단숨에 절단해버렸다.

-마크 07 그레이, 메가세리움 베타 모두 반경 40m 내외에서 벗어나십시요. 김치의 D.C.S가 가동되었습니다. 30초 안에 김치의 코어가 붕괴될 것입니다.

카렌티어스의 지시가 있기 전에 마크 07 그레이는 김치의 파일럿 캡슐을 든 채로 순식간에 뒤로 후퇴했으며 메가세리움 베타 역시 빠른 속도로 뒤로 후퇴했다.
그리고 30초 뒤, 용에게 빼앗긴 한국 트론 K05 김치의 코어가 붕괴함과 동시에 용과 함께 소멸해 버렸다.

“큭...”

카렌티어스는 낮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용에게 크로싱을 건 것은 처음이긴 했지만, 용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용에 동화된 김치가 자폭할 때의 고통 역시 크로싱한 상태의 카렌티어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오빠, 괜찮아?

시스템을 통해 유리카의 목소리가 카렌티어스에게 들려왔지만, 카렌티어스는 듣지 못했다.
용에게 침식되어 제 구실 못하는 본부의 시스템의 제어와 트론의 코어 제어, 용에게 강제 크로싱 같은 일과 용에 촉수에 휘감겨 그 가시에 찔려 입은 부상, 그 모든 게 겹쳐 피로라는 이름으로 카렌티어스를 덮쳤기 때문이다.

“조금, 쉬어도 되겠지...”

그대로 카렌티어스는 나머지 컨트롤을 자율에 맡겨둔 채, 두 눈을 감았다.



“소라야? 괜찮은 거냐?”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노 박사가 마크 07 그레이가 내려놓은 K05 김치의 파일럿 캡슐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나오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단발의 소녀를 보며 말하였다.

“할아버지...”

소라라고 불린 소녀는 어느 새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노 박사에게 달려가 안기며 울면서 말하였다.

“무서웠어요. 우에엥...”

“그래, 괜찮아. 살아 있잖아. 응, 소라야. 그러니 그만 뚝 그치렴.”

노 박사와 박사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소라를 보며 마크 07 그레이에 파일럿 캡슐에서 막 나온 유우키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하아, 정말 용이란 존재가 뭔지, 저런 어린 여자애를 트론에 태우게 만든 건지. 그것보다 카렌티어스에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바퀴 달린 들것이 의료 요원들에 의해 빠르게 응급처치/수술 실로 이송하고 있었다.
바퀴 달린 들것에는 잡다한 응급처치용 생명유지용 기구들과 함께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용의 촉수에 달린 가시에 찔린 상처로 인한 출혈로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은 카렌티어스가 누워있었다. 의료 요원들과 함께 바퀴 달린 들것을 밀면서 달려가고 있는 유리카는 연신 오빠를 불러대며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계속 따라갈 참이었던 유리카도 응급처치/수술 실 문 앞에서 다른 의료 요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이거 놔요!! 오빠가!! 오빠가!!”

“유리카, 카렌티어스는 괜찮을 거야. 날 믿고 여기서 기다려.”

유 박사는 계속 어떻게 해서든 응급처치/수술 실로 들어오려는 유리카에게 그렇게 말한 뒤 그대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에는 이미 수술 준비를 끝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클레이즈 박사님.”

유 박사의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이며, 단호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하였다.

“준비 OK.”

                        ○                                            ○

‘카렌티어스 뭐 하고 있는 거야?’

붉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지닌 4살 정도의 소년이 블루블랙의 머리카락과 역시 같은 색의 눈동자를 지닌 같은 나이의 소년, 카렌티어스를 부르며 물었다.

‘아카라, 이건, 점자책이라고 장님들이 손가락으로 읽는 점자라는 것으로 씌여진 책이야.’

‘에, 카렌티어스는 장님도 아닌데 점자책은 왜 읽는 거야?’

아카라의 물음에 카렌티어스는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어. 나, 태어날 때부터 눈에 심각한 병이 있다고 했어.’

‘에, 무슨 병이야? 많이 아파?’

아카라의 말에 카렌티어스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하였다.

‘아프지는 않아. 아카라. 하지만, 아프진 않지만 대신 언제, 장님이 될지 모른데. 그래서 점자를 열심히 익혀두지 않으면 안돼. 지금도 눈앞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겹쳐 보이거든.’

카렌티어스의 말에 아카라는 카렌티어스의 양 손을 갑자기 잡았다. 그리고 카렌티어스의 탁한 블루블랙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카렌티어스! 나 결심했어!’

‘응 뭔데?’

‘나, 의사가 될 거야. 그래서 카렌티어스의 눈을 고쳐 줄 거야!’

아카라의 말에 카렌티어스는 놀람과 동시에 금방 뭔가가 생각 난 듯 말하였다.

‘에, 정말? 그치 만, 저번에 너 대통령이 된다고 하지 않았어?’

‘꿈은 크게 가지라잖아? 당연히 대통령이랑 의사랑 둘 다 할 꺼 야!! 그러니까, 카렌티어스 너도 이런 점투성이 책 읽을 필요 없어!!’

갑자기 아카라가 카렌티어스가 들고 있던 점자책을 빼앗아 들더니 그대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아카라!! 거기 서!!’

열심히 달려가던 카렌티어스는 그만, 돌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올린 카렌티어스의 눈앞엔 아카라가 있었다.

‘잡았다. 아카라.’

아카라의 푸른색 눈동자가 적색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하나가 되겠어? 아니면, 또 다른 의지로서 존재하겠어?’

‘아니면, 사라지겠어?’

                        ○                                            ○

“헉!!”

카렌티어스의 두 눈이 뜨여졌다.
눈앞에 보여 지는 하얀 천장을 보며 카렌티어스는 안도 한 듯 말하였다.

“꿈이라서 다행이야. 하지만, 왜 끝에 그런 꿈을...”

단순히 안도하며 도로 눈을 감았던 카렌티어스는 다시 눈을 떴다. 그렇게 떴다가 감았다를 반복한 뒤 카렌티어스는 눈에 다시금 힘을 주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의 행동을 반복했다. 그러다 옆에 탁자에 놓인 손거울이 눈에 들어오자 그걸로 자신의 얼굴을 비쳤다.
조금 헝클어진 백금발의 머리카락, 하얀 피부, 그리고 따뜻해 보이는 적색의 눈동자.
카렌티어스는 놀랍다는 듯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용안이... 완전히 제어되고 있어... 완전히...”

“그래, 용안은 이제 완전히 네 맘대로 제어가 되게 된 듯 하네.”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카렌티어스는 시선을 돌렸다. 두 눈에 비친 것은 클레이즈 박사였다.

“클레이즈 박사님...”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첨보는 것처럼 말을 하니? 음, 하긴 그동안은 일부러 장님처럼 살았으니, 용안으로 나를 보는 건 처음이구나? 어때, 용안을 완벽하게 제어하게 된 기분이?”

클레이즈 박사의 질문에 카렌티어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말하였다.

“용안이 타인의 마음이나 생각, 또는 사물의 구성물질이나 등등을 멋대로 분석해서 읽어 들이지 않으니 편하군요.”

“그 말은, 네가 원할 때만 타인의 마음이나 생각을 읽거나 물체의 구성물질을 분석해 낼 수 있게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뭐 어쨌든 완벽히 제어가 되니 더 이상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제어할 때 빼곤 장님 행세 할 필요는 없게 되었네. 축하한다.”

“그것보다,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죠?”

카렌티어스의 자뭇 진지한 질문에 클레이즈 박사는 곰곰이 계산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굴리며 말하였다.

“흠, 글쎄, 네가 피투성이로 여기 응급치료실 겸 수술실에 온 것을 기준으로 하자면, 142시간 되려나?”

“그 말은 5일 22시간, 즉 거의 6일 동안 제가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응. 아마도.”

클레이즈 박사는 새침하게 분홍빛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말하였다.
그러나 카렌티어스는 클레이즈 박사의 말에 냉큼 상체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럼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지...!!”

“당연히 쳐들어 온 용은 알트 아이젠의 트론과 마크 02 스카디가 개박살 내주었으니까, 걱정 말고, 넌 좀 쉬라고. 괜찮아. 쳐들어 온 용들도 소규모의 용인데다 약한 놈들뿐이었으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카렌티어스는 한숨을 쉬며 도로 침대에 누웠다.

“너도 알고 있겠지. 사실, 용안이 분석해내고 들여보내는 그 방대한 정보를 ‘인간’의 뇌는 도저히 수용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인간의 몸 자체가 용안을 부담하기엔 도저히 레벨이 맞지 않는 것을 말이야.”

“새삼스레,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뭐지요?”

카렌티어스의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말이야. 너의 몸을 연구하면 할수록, 점점 보이는 그 가능성이 말이야?”

“인간과 용이 서로 공존할 수도 있겠다라고 말이야.”

클레이즈 박사의 말에 카렌티어스는 잠자코 듣다가 입을 열었다.

“2040. 12. 25. 시드니. 대대적인 용들에 공격을 겨우 막아내었으나, 사상자 중 시드니 주민 비율은 90%. 사상자 명단 중에 아이아스 클레이즈, 넨시아 클레이즈도 포함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카렌티어스의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들어올리며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사실이야. 그이는 2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났고, 넨시아, 그 애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지. 꿈을 꾸면서 용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고 말이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보통 사람들이라면 용을 하나라도 쓰러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증오하는 게 당연할 텐데 말이야.”

“지킬 게 있으니까. 그 애가 아직 살아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애가 자신 안에 용과 싸우는 것을 도와주는 것뿐이야. 아까 말했듯이 인간과 용의 공존, 그 가능성을 찾아서 이루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그리고 그 애를 위해서기도해.”

클레이즈 박사의 말을 잠자코 듣던 카렌티어스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공존이라 함은 서로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대화를 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알다시피, 용이 먼저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상대와 대화 자체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카렌티어스, 정말 모르겠니? 네 몸 자체가 인간과 용이 서로 공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증표라는 것을.”

클레이즈 박사는 그 말과 동시에 한 사진을 꺼내어 들었다. 사진에는 4살가량의 두 소년이 찍혀 있었다. 한 소년은 블루블랙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눈동자를 지닌 소년, 그리고 그 옆에는 적색의 머리카락과 탁한 푸른색의 눈동자를 지닌 소년이 사진 속에 있었다.
클레이즈 박사는 사진을 카렌티어스에게 보이며 마저 말을 이었다.

“카렌티어스 넌 원래 이런 외모가 아니었지.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후로 1년 뒤에 지금의 너가 되어버렸지. 네 옆에 있는 적색의 머리카락의 아이는 네 원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인 블루블랙으로 스스로 염색해 버린 채로 케이지에서 살아왔고.”

“무슨 일이 있었지?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이야기 해줄 수 있겠니?”

클레이즈 박사의 말에 카렌티어스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카라가 자신과 어머니에게 한 짓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겁을 먹은 듯 도망가는 아카라의 뒷모습을 보며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때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어머니의 죽음), 내 책임으로 돌리도록. 그러면 아카라도 용기를 내어 내게 와서, 이야기 할 것이라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그런 카렌티어스를 보며 클레이즈 박사는 카렌티어스와 아카라의 4살 때 찍은 사진을 거두며 포기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지금 당장 이야기 하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이건, 네 아버지인 커텔 사령관도 모르는 진실이야. 하긴 그 진실을 커텔 사령관이 알았다면, 네 소중한 친구이자, 나에겐 소중한 친구의 유일한 자손이기도 한 ‘아카라 에르나’는 아마 예전에 죽었을 거야.”

“그것이 무슨 뜻이죠? 아카라가 예전에 죽었을지도 모른다니?”

‘아카라’라는 말 한 마디에 카렌티어스는 즉각 벌떡 일어나며 말하였다.
카렌티어스의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마저 이야기 하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아카라, 그 애는 티아리스트(Tialist), 정확히는 티아리스트의 부활을 위해 그 코어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그릇.”

                        ○                                            ○

‘이것이 티아리스트의 코어.’

클레이즈 박사는 반지름 7m에 지름 14m정도로 추산되는 티아리스트의 진홍색의 코어를 보며 그 말을 내뱉었다.

‘우리 인류를 그렇게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몰아새운 존재 치고는 너무 단순하지. 하지만, 슈리엘,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실은 단단한 껍질에 불가할 뿐이야. 진짜, 코어를 보호하고 있는 혼돈이라는 껍질이지.’

(백금색의 허리까지 오는 머리카락에 보석 같이 진한 녹색의 눈동자를 지닌)티아세리스 에르나, 그녀의 보석 같은 진한 녹색의 눈동자는 티아리스트의 진홍색의 코어를 바라보며, 그녀의 작은 입이 열리며 그 말을 하였다.

‘호오, 그래? 그럼 티아세리스, 진짜 코어는 얼마 만한데? 껍질이 이렇게 크다면 그만큼 클 것 같은데.’

‘아니, 중심부에 위치한 진짜 코어는 고작 반지름 8Cm, 결론은 지름 16Cm정도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작아. 그 만큼, 약하기도 하고.’

‘하아, 엄청 깨는 크기잖아. 인류가 핵무기를 쓰게 만든 상대가 실은 이런 초미니 사이즈의 코어를 가지고 있다니.’

‘하지만, 대신 그 만큼 겉에 진홍색의 껍질, 혼돈이라는 껍질은 그만큼 단단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지.’

티아세리스는 티아리스트의 진홍색의 코어에 다가가 손을 표면을 갖다대며 말하였다.

‘만약, 용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묻고 싶어. 왜 이 세계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절망 속으로 몰아넣어야 했는지를 말이야.’

‘대화를 하는 건 좋지만, 그건 상호이해를 마친 뒤 가 아닐까? 티아세리스.’

그때 클레이즈 박사의 뇌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호... 이해... 란 말인가?...」

순간 티아리스트의 코어에서 황금빛의 촉수들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코어에 표면에 손을 대고 있던 티아세리스를 감싸버리더니 그대로 코어 속으로 늪에 빠져드는 것처럼 티아세리스는 코어 속으로 빠져 들어가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클레이즈 박사는 커다란 충격에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었다.

‘티아세리스!!!’

                        ○                                            ○

“무려 15년 전 이야기야. 너도 그리고 아카라라도 태어나기 전 일이지.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렇게 코어에 흡수된 티아세리스는 6개월 만에 도로 내뱉어 졌지. 아마 그때, 커텔 사령관이 리에랑 결혼 한 게 그때쯤일 거야.”

“혹시라도 나더러 6개월 동안 티아세리스를 구하지 않고 뭐했냐고 물을지 몰라서 하는 말이었지만, 티아리스트의 진짜 코어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껍질은 아마도 핵폭탄을 터트려도 깨지지 않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무도 단단한 것이었지. 6개월이 다되어서 겨우 장비를 개발해서 조금씩, 조금씩 코어의 껍질을 잘라내었을 정도였으니까.”

클레이즈 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카렌티어스는 곧 정신을 차리고 클레이즈 박사에게 말을 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 태어난 게 아카라 라는 것이군요.”

카렌티어스의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숨을 고르며 말하였다.

“그래. 그 일이 있은 후, 4개월 뒤에 티아세리스는 아카라를 출산했지. 생전 남자라고는 커텔 밖에 모르는 여자가 처녀의 몸으로 말이야. 하긴 그 티아리스트의 코어 껍질이 티아세리스를 도로 내뱉었을 땐, 그녀의 몸매는 임신 6개월에 임산부와 비슷했었지만. 뭐, 어떤 충격인지 감은 잡히지만, 아카라가 태어 날 때까지 말도 하지 않고 이유 없이 울먹이기도 하고, 정신 상태가 말이 아니었어. 그리고 아카라가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뒤에 리에가 너를 낳았고.”

“그래서, 제 몸에 어디가 인간과 용이 공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카렌티어스의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한 연구 보고서 같아 보이는 서류를 꺼내더니 카렌티어스에게 냅다 던져주며 말하였다.

“그 연구 결과에 대한 서류를 보면서 들어. 용안을 시작으로 유전자 레벨, 장기, 세포 등, 완벽하게 용과 융합되어 있어.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완벽하게 말이야. 융합된 용의 유전인자도 믿을 수 없지만, 그 최초의 용 티아리스트와 완전히 같은 거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이만큼 이야기 했는데 모르겠니? 뭐, 덤으로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유리카 역시 너 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약간의 티아리스트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지. 뭐 태어나기 전에 리에가 동화되었으니, 약간은 당연하지만, 그 덕에 티아리스트의 코어 껍질, 혼돈의 조각으로 움직이는 트론 마크 02 스카디를 움직일 수 있는 걸지도.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만.”

카렌티어스는 말이 없었다. 그저 클레이즈 박사가 냅다 던져준 연구 보고서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클레이즈 박사님... 이런 몸을 지닌 저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카렌티어스의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싱긋 미소 지으며 말하였다.

“글쎄? 인간의 정의가 대체 뭘까? 단순히 생명공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인간답게 행동하고, 인간적인 마음을, 의지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난 너를 인간이라고 정의를 내리기 보다는, ‘인간과 용의 유일한 유효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어. 인간의 마음과 의지를 지닌, 그리고 용의 힘을 지닌 전 세계에 유일한 ‘인간과 용의 공존체’라고 말이야.”

클레이즈 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카렌티어스는 조용히 자신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말하였다.

“‘인간과 용의 공존체’라는 것인가?”

순간 카렌티어스의 머릿속에 뭔가 최악의 가정(가족 할 때 그 가정 아님;;)이 하나 지나갔다. 그대로 카렌티어스는 클레이즈 박사를 바라보며 떨리는 입을 열며 말하였다.

“그렇다면, 만약 용들이 아카라와 접촉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죠? 분명, 클레이즈 박사님은 아카라가 티아리스트의 코어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이야기하셨죠?”

카렌티어스의 다급한 말에 클레이즈 박사 역시 굳은 얼굴로 두 눈을 감은 채로 말하였다.

“아카라가 담고 있는 티아리스트의 코어를 자극하게 되겠지. 그리고 최악은 티아리스트의 코어가 폭주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이겠지만, 그건 단기적인 최악의 상황이고 장기적으로는 티아리스트의 코어의 각성, 그리고 아카라가 티아리스트로 부활하는 것이겠지. 뭐, 게임으로 치면, 인류는 미리 GG 쳐야 하는 상황이려나.”

“그렇게 되면, 아카라는, 아카라는 어떻게 되는 것이죠?”

카렌티어스의 질문에 클레이즈 박사는 담담히 두 눈을 뜨면서 말하였다.

“네 생각엔 어떻게 될 것 같니?”

“여러 번의 걸친 연구로는 결론은 하나야. 아카라, 그의 인격, 기억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되어버리지. 그들 용에겐 티아리스트의 코어를 담고 있는, 부활의 그릇이나 마찬가지인 아카라의 기억이나 마음 같은 건 필요 없는 것이니까.”

클레이즈 박사의 말에 카렌티어스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                                            ○

적색의 눈동자와 적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5살 정도의 소년에 손에서는 적색의 수정이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나이의 블루블랙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눈을 지닌 소년에게 말하였다.

‘하나가 되겠어? 아니면, 또 다른 의지로서 존재하겠어?’

‘아니면, 사라지겠어?’

적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의 말에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은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적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그대로 적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을 땅에 눕히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해!!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아카라!! 대답해 봐!!’

순간 적색의 머리카락의 소년의 적색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져 간다. 적색의 소년에 손에 돋아난 적색의 수정에 금이 가더니 깨져나간다. 그리고 환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갑작스런 빛에 눈이 부셔 두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서는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에 귀에 익숙하지 않은 톤이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으로 있기로 선택 했구나. 그리고, 나 역시 자신으로 있게 해주어서... 고마워. 카렌티어스.’

                        ○                                            ○

“아니요. 아카라는, 그의 의지로서 남아 있을 겁니다. 설령, 티아리스트로 부활한다 해도, 아카라는 자신의 기억과 마음, 의지를 잃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카렌티어스의 단호한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약간 놀랐다는 듯 다시 카렌티어스에게 질문조로 말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지요?”

“저, 역시... 기억과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을 뻔 했으니까요.”

“역시, 네가 지닌 용안과, 너의 몸, 그리고 유리카의 몸이 그렇게 된 건 아카라가 관여되었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용에게 침식당한 어머니를 죽인 것도 저고, 유리카를 어머니의 뱃속에서 꺼낸 것도 저입니다. 아카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카렌티어스의 단호한 말에 클레이즈 박사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순 거짓말이면서. 뭐, 좋아.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믿어볼게. 그럼, 빨리 나아서, 유리카를 보듬어 주라고. 그 애 완전 초상난 것 마냥 굴어서 말이지.”

“그런가요. 그럼 빨리 나아보도록 노력해 보도록 하지요.”

클레이즈 박사는 병실을 나가려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하였다.

“아참, 네가 5년 전에, 그러니까 시즈미랑 네가 한창 잘나가던 때에 그때 내게 한 말 있었지?”

“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트론에 내장할 수 없겠냐고?’ 말이야.”

“설마?”

카렌티어스는 설마 하는 마음에 클레이즈 박사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래, 결국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불가능이라고 여겨졌던 일이었지만, 유럽의 그, 베드로를 포함, 12사도라는 트론을 만든 유럽 최고의 기술진과 하여튼 전 세계에 날고뛰는 기술자들이 전부 모여서 최고의 기술과 재료로 만든, 현존하는 트론 중, 스카디와 비교하긴 그렇겠고, 베드로와 비교하자면 베드로보다 2단계나 더 뛰어난 스펙에 최신예 트론이지. 기체 코드는 ‘트론 마크 유그드라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내장 탑재한 데다, 지금까지 기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조된 코어를 동력원으로 쓰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까지 트론과 비교해서 전혀 다른 신 모델이지. 그래서 번호가 붙지 않아. 자세한 건 요 디스크에 다 들어 있으니까, 거기 단말기에 삽입하고 읽어보면 될 거야.”

클레이즈 박사는 품에서 자그마한 디스크를 꺼내어서는 카렌티어스에게 주며 말하였다.

“한 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그 코어란 바로 네 몸과 결합한 티아리스트의 유전인자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어떻게 보면 티아리스트의 코어를 재구축한거지. 다른 면도 적지 않지만. 그 덕에 너 밖에 조종할 수 없게 되어버리긴 했지만.”

“덕분에 이제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이 미치지 못하는 원격지에서의 작전에 대한 문제는 해결된 셈이군요. 고맙습니다. 클레이즈 박사님.”

카렌티어스는 클레이즈 박사가 건네주는 디스크를 받으며 그렇게 말하였다.
클레이즈 박사는 자뭇 걱정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말 괜찮겠니. 트론과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의 이중 부담, 그 외에 다른 파일럿들이 느끼는 고통. 후회하지 않니?”

“후회 할 거였으면, 부탁하지도 않습니다. 도망가지 않습니다. 시스템에 링크된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갈 것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럼 나는 이만.”

클레이즈 박사가 나가고 난 뒤, 카렌티어스는 조용히 디스크를 단말기에 넣고 자신이 타게 될 트론 마크 유그드라실에 대한 데이터를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카라, 네가 왜 너의 어머니인 티아세리스와 비슷한 모습으로 나를 바꾸어 놓은 것인지, 직접 물어봐야 겠지만, 어쩌면 이미 답이 나왔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를 통해서 이제는 없는 어머니를 보고 싶었던 건가?”

“아카라, 넌 지금 어디 있지? 설사 네가 티아리스트로 부활한다 해도 넌 너의 기억과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울 거라고 나는 믿고 있어. 아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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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alist] 017 : Gray와 S-X01
글쓴이 : 카에데


어느새 새해가 다가왔지만 유라시아 지부 본부는 지금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카렌티어스는 그의 방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마크 유그드라실에 대해 밤을 새워 연구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아직 붕대로 감겨져 있었고 아직도 수술을 뒤로 얻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유리카는 그의 오빠, 카렌티어스를 위해 예전에 배운 카스테라를 만들어
카렌티어스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선물했지만 카렌티어스는
그리 좋은 표정이 아니다. 카렌티어스는 억지로 웃으며 그 음식을 받아 들었고
유리카가 그 방을 나가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카가 그 방을 나가면 카스테라를 어떻게든 처분하려고 했다)

"오빠, 이게 뭐야? 반짝반짝 빛나는 트론인데?"

"이건 마크 유그드라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이 이 트론에 내장 되어 있어서
본부의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이 파괴되거나 없어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거지."

"와. 그럼 오빠가 파일럿이야?"

"응. 물론이지. 그런데.. 할 일 없으면 복구 작업을 돕기라도 하지..?"

"뭐. 오빠가 원한다면 도우러 가야지. 갈께~"
유리카는 웃으며 방을 나갔다. 그 때 카렌티어스는 한 숨을 쉬었다.

"후우.. 큰 일 날뻔.."
큰 일 날뻔이라고 말하려던 순간 유리카는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빠.."

"왜, 왜?"

"카스테라는 다 먹어야 돼. 알았지?"
그 때 카렌티어스는 속이 끊었다.

"으.. 응? 물론이지."

억지로 유리카를 떼어낸 카렌티어스는 몇 분 뒤에 작업을 마쳤다.
하지만 그 카스테라는 여전히 책상 위에 있었다.
카렌티어스는 두려운 마음으로 침을 꿀꺽 삼킨 뒤 카스테라를 먹어보았다.

"우.. 우.. 웩!"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카스테라에 짠 맛이 나다니.
설탕과 소금을 구별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카렌티어스는 역겨운 얼굴로 카스테라를 그대로 두고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이 있는 곳으로 갔다.



- 트론 팩토리
트론 팩토리에는 10시간 전 유라시아 지부를 찾아온
노 박사와 기술자 수십 명이 있었다.

"자네들은 좌우 팔 중앙에 있는 메스 콜레트를 새 모델로 교체한 다음에,
아니 교체 하기 전에 내부 구조를 여기 내부도를 참고해서 바꾸어 놓게"

"아, 그리고 자네들은 복부에 있는 회로들을 뒤쪽에다 고정 시켜 놓게.
있잖은가 바이오 부스터 장착하는 곳. 그리고
자네들 다섯은 한국에서 가져온 보조 장비 있잖은가. 임펄스 쉴드, 네오리즘 파츠
이런거. 개조가 끝나면 장착하게"

한창 노 박사와 기술자들이 트론 마크 그레이를 개조하고 있었다.
유 박사와 클레이즈 박사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클레이즈 박사가 유 박사에게 말했다.

"이만 가봐야 될 것 같군요. 할 일이 태산같이 쌓였거든요."

"아. 그러세요."
클레이즈 박사는 다시 돌아갔고 유 박사 혼자서 구경하고 있었다.

"아. 참 쓸만한 트론이었는데 미완성이었다니- 완성이 되면 더 완벽해질 겁니다."
유 박사는 갑자기 그 말을 듣고 뒤 돌아 보았다. 그곳엔 유우키가 있었다.

"아. 아.. 그럴 거에요."

"파일럿은 누구로 정했습니까? 이왕이면 능력 있는 파일럿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Cage에서 지상전 시뮬레이션에서 능숙했던 파일럿 5명을 엄선했어요.
그 중에서 선택해야겠죠."

"만나게 해주십쇼. 그 5명."

"예?"
유 박사는 깜짝 놀랐다.

"트론 마크 그레이는 미심쩍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코어가 특이한 것이라던가. 아무튼 제가 탔을 때는
기분이 이상해지고 마음 속이 음흉해 지더군요.
마음이 약한 파일럿은 정상적으로 이 트론을 빠져 나오기 힘들 겁니다.
파일럿의 마음이란 건 시뮬레이션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거 잖습니까."

"그렇군요. 그리고, 아까 그 말은 그레이의 폭주와도 연관 될 수가 있어요.
분명히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죠.
특히 지금은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이 파괴되어서 더 시급하겠군요."
유우키는 그 3시간 동안 5명의 아이들을 만나 그 아이들을
테스트 해보았다. 인격 무시라 할 지라도.

4명의 아이들은 모두 형편이 없었다.
클래스가 B미만이라던가. 약심장이라던가. 지극히 평범했다.
그러나 마지막 아이는 달랐다.
그의 이름은 S-X01. 스스로 "라스" 라고 이름을 말했다.

솔직히 그 아이는 외모부터 조용하고 내성적으로 보였다.
유우키는 적격인 파일럿이 이젠 없는 건가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테스트 하는 동안 유우키는 속으로 경악했다.

라스 라는 그 아이는 무언가 슬프거나 분노하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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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시뮬레이션 전투를 할 때 '분노'란 걸 느껴봤나?"

"분노..? 아닐지도 모르지요.. 생명의 존엄성 따위 불살라 버리는 것 쯤,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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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가 끝났고 유우키는 약간 두통을 느낀 듯.
머리를 쥐며 밖으로 나왔다.

"아. 시원하군 겨울 바람이 이렇게 시원했던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 . . ."

"온도 가고 풍도 간 시간 속에서 오는 겨울이라. 멋지군."
그 때 유 박사가 그에게 찾아 왔다.

"어떻습니까? 무언가.. 피곤해 보이네요.
제격인 파일럿은?"

"딱 한 명 있습니다. 감정의 변화 없이 용의 농락에도
내색하지 않을 만큼 강한 S-X01이 적격입니다."

그 말을 듣고 유 박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유 박사는 커텔에게
그레이의 파일럿으로 S-X01을 추천했다.

며칠 뒤 그레이는 완성 되었다. 스피드 면에서나 파워면에서나
(물론 무기를 사용하지만) 강한 지상전투용 트론으로.

본부는 아직 복구 되지 않았다. 컴퓨터 통신망 문제 때문에 복구가 지연되기도 했다.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역시 아직 복구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카렌티어스는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을 고치면서 유그드라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 때까지만 용이 나타나지 않으면...!"



- 사령관실

한가하게 복구 현황을 보고 있던 커텔은 노 박사를 맞이 했다.
그 역시 그레이의 완성 소식을 듣고 난 뒤였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박사님"

"아니오 김치가 준 피해도 적지 않은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요."

"음. 그레이에 무슨 능력이 추가 되었습니까?"

"일단 김치의 임펄스 쉴드를 탑재해 두었습니다.
트라이 건이나 나이트 하르트는 추가적으로 더 탑재해 두었고.
한국에서 개발한 네오리즘 파츠도 탑재했습니다."
네오리즘 파츠를 듣고 커텔은 놀랐다.

"네오리즘 파츠 말입니까. 그건 뭡니까. 굉장히 뛰어난 성능으로 소문이 자자하던데."

"흐음. 그건 트론의 내부에 설치하는 일종의 갑옷인데 다성능 갑옷입니다.
임펄스 쉴드와 연계되어 있어. 공격할 때도 방어 할 때도 쓰이는 것이죠."

"후후. 수고하셨습니다."
커텔은 씨익 웃으며 노 박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노 박사는 그의 방을 나가며 투덜댔다.

"콜록콜록. 그 양반 참 담배를 하루 종일 피우는 군."
솔직히 그의 방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그 때 사이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크게 땅이 흔들렸다.
노 박사는 엎드린 뒤 말했다.

"뭐. 뭐야. 지진인가?!"
그 때 커텔이 밖으로 나왔다,

"음. 지진이 아닙니다. 용입니다."
그리고 곳곳에 장착된 스피커에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부의 남동쪽의 C-5768 구역에서 트론이 출현 거대한 충격파를 지표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 삼각형 8개가 모인 8면체 다이아몬드 모양에 눈으로 추정되는 원이 정면에 있고
촉수가 면 마다 하나씩 있습니다."

"완성하자 마자 성능을 시험하게 되었군. 훗훗"
커텔은 담배를 피우며 웃었다.



곧 트론 그레이와 시엘, 드로우가 사출되었다.
그러나 드로우의 파일럿 지수는 에릭의 죽음으로 마음 속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슬퍼 보였다고 하는게 옳은 말일 것이다.

3대의 트론이 용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고 용은 트론들을 보자마자
촉수로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마크 시엘은 뒤로 피했고 드로우와 그레이는 촉수를 한 팔로 잡을 뒤 잘랐다.
그러나 촉수는 다시 재생되었고 촉수 8개가 그레이와 드로우를 덮쳤다.
그레이는 잽싸게 도망갔지만 드로우는 그러지 못해 촉수에 감싸져 움직이지 못했다.
지수는 조여오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계속 발버둥 쳤다.

"아직 에릭의 복수도 못했는데. 이렇게 죽을 수 없잖아!!"
지수는 계속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촉수가 너무 많은 탓인지
빠져나오기가 힘들어 보였다.

"트론 마크 시엘, 저격해라!"
커텔의 명령에 지나는 용으로 조준해서 발사했다.

그러나 용의 껍질이 단단했는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런.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용의 눈으로 추정되는 곳을 조준하여 발사했다.
그러나 역시 별 고통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그 대신 용은 성가시다는 듯 드로우를 풀어 놓고 시엘에게 촉수로 공격했다.
드로우는 아까의 충격으로 기체에 손상이 많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레이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S-X01! 뭐하는 거야! 용을 제지해!"
커텔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레이는 계속 가만히 있었다.

시엘이 피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촉수는 날카롭게 변해 시엘의 허리를 절단했다.

"아아악!!!"
지나는 소리를 지르다가 기절한 듯 더 이상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방심했군 스카디를 사출시켜."
커텔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명령했다.

"트론 스카디는 아직 수리 중입니다."
오퍼레이터 한 명이 보고 했다.

"....젠장, 유 박사.."
커텔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긴장된 듯 말했다.

그레이는 쓰러진 시엘을 보고 무언가 알아 차린 듯 용을 다시 공격했다.
용을 잡은 뒤 나이트 하르트로 찔렀지만 나이트 하르트가 깨져 버렸다.
그레이는 뒷걸음 질 치다가 다시 용을 발로 차려고 뛰어갔다.
그 때 용의 촉수 3개가 그레이의 머리를 관통하였다.
원래는 절단하려고 날린 촉수였지만 절단하지 못하고
갑옷 틈사이로 관통한 것 뿐이었다.
시뻘건 액체를 심하게 내뿜으며 그레이는 쓰러졌다.

"이..이럴.."
아직 쓰러지지 않았지만 고통이 가시지 않은 지수가 드로우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용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쉥, 쉥"

또 다시 용의 촉수는 드로우의 양팔과 머리를 대각선으로 절단했고
드로우는 빨간 액체를 뿜으며 쓰러졌다.
지수는 절단 되기 전에 조여왔던 고통 때문에 기절한 것 같았다.
그 때 드로우의 몸은 하체와 복부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때 몸이 가장 온전했던 트론은 그레이 뿐이었다.
용은 그레이를 주시하더니 부활을 염려했는지 그레이를 절단하려고 촉수를 날렸다.

"쾅! 쾅!"

용이 절단하려고 날린 소리는 쾅 소리를 내며 튕겨나갔고 절단 되지도 파손되지도 않았다.

"그레이는 아직 일어날 수 있을 텐데. 여러모로 실망을 안기는 군"

커텔이 대형 PDP에 나오는 그레이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드로우, 그레이, 시엘의 에너지가 모두 바닥난 상태입니다."

"그레이는 머리를 관통 당할 때 트론 자체에게 큰 충격이 간 모양입니다."



-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카렌티어스는 모두 고쳐지지 않은 화면으로 전투를 보면서 빌었다.
"젠장! 왜 하필 이 때!"

카렌티어스는 전투 구경을 하며 아군이 이기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 전투
끝 없이 그레이를 공격하자 그레이의 안면이 찢어져 날아가고 그레이의 갑옷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곧 그레이의 코어가 조그맣게 드러났다.
용은 무언가를 아는 듯 코어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레이의 코어 역시
전설에서만 나오는 광석처럼 단단했고 오히려 용에게 고통을 주었다.
용은 더 이상의 공격도 좋을 것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뒤돌아서 본부를 공격했다.
용의 촉수는 본부의 동쪽 부분을 박살 내버렸다. 커텔과 오퍼레이터들이 있던 곳이었다.
본부의 벽이 무너져 커텔과 오퍼레이터들은 이제 밖을 볼 수 있었고 용과 그레이도 볼 수 있었다.
오퍼레이터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 때 그레이가 일어섰다. 0을 가리키던 그레이의 그래프 스파크는 100.. 200..을 넘어 300이 되었다.

"그래프 스파크 200이라. 스카디가 레비아탄을 상대 했을 때와 낮지만. 위력은 강하다 그래도 폭주한 건 아닐 테다.. 그렇게 믿는다"
그 때 그레이는 임펄스 쉴드로 용을 공격했다.

에너지를 모르더니 크게 발산 시켜 용을 산산 조각 내버렸다.
눈 부신 빛을 방출하며 폭발하는 용을 보며 커텔은 고개를 저어 말했다.

"역시, 동조율만 높은 쓰레기 후보 소모품이었군."

그 시간, 구름에 눈만 내려오던 하늘. 구름이 걷히고 해가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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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alist] 018 : 미카엘의 창
글쓴이 : 다르칸


콰과강. 성 바티칸 제국의 수도인 교황청이 있는 도시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건물들은 모조리 파괴되었고 교황청이라는 거대한 건물 역시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조각나 있었다 .
쿠우우웅. 조각나 버린 폐허 한 가운데에는 수십미터에 달하는 코끼리모양의 괴수가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으며, 놀랍게도 유라시아에 있어야 할 '스카디'가 그 옆에 있었다.

"꺄하하하. 왜 안데르센 아저씨는 안 나오지?"

한참이나 웃던 스카디로 보이던 용. 리샤 발렌타인은 두리번거리면서 지금쯤이면 나타날 트론 베드로를 찾고 있었다.
즈우웅. 기계음이 울리며 천지가 요동쳤다. 대지가 갈라지고 한 때에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이 도시의 좌우로 흩어졌다. 그 가운데에 새로운 '땅'이 생겨나면서 12기의 트론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두꺼운 천으로 기체를 감싸고 있어 언뜻 보기엔 그냥 20M 가량 되는 동상으로 밖엘 보이지 않는다.

- 12사도. 그대는 무엇인가?

- 우리는 12명의 사도. 신의 뜻을 받들어 천벌의 주최로써 우뚝서는 자들! 멈추지 않는 발걸음과 손놀림과 저주를 퍼부어 내리는 입담과 세치의 혀를 놀려 죽음을 부르는 자들!

- 12사도! 배신자의 유다여, 그대의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

땅 속에서 솟아오른 12기의 트론 중 가장 왼편에 서 있던 트론이 천을 뒤집어 던졌다. 광택이 흐르는 사막빛의 황금 장갑을 걸친 트론은 '유다' 한 손에는 거대한 창을 한 손에는 마상전투에서 말과 그 기수까지 가른다는 청공검의 예 중 하나로 표현되는 참마도였다.

- 나, 유다의 왼 손에는 주인을 베고 그 종을 베는 참악도를, 오른 손에는 모든 부정한 것을 찌르고 나 스스로를 찔러 지옥으로 이끄는 자선창을 들어 있소이다.

- 12사도! 가나안의 시몬아! 그대의 양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

펄럭. 왼편 두번째의 트론이 천을 걷어내자 이번에는 휘황찬란한 하늘빛으로 꾸며진 여성스런 분위기가 풍기는 트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소리도 고운 것이 마치 유일한 여성체 천사인 가브리엘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 손에는 낫을 다른 한 손에는 작은 통을 들고 있었다.

- 나, 가나안 시몬의 왼 손에는 하늘을 뚫고 구름과 함께 악을 베는 창궁을, 오른 손에는 저주를 담고 저주를 던지고 악을 담고 생을 구하는 신의 독약이 들어있소이다.

- 12사도! 다테오 유다!! 너의 양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

이번에는 흰색의 트론이 나타났다. 양 어깨에는 지옥도와 천국도가 섬세하게 조각되어져 있었으며,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었다.

- 나, 다테오와 유다는 왼 손에 신이 주신 징벌의 검을 오른 손에는 교황의 부르짖음이 담긴 방패를 들고 있소이다!!

- 12사도! 작은 야곱. 그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희안하게도 이번 트론은 검은 색 일색이었으며, 양 손에는 거대한 책과 같은 네모난 것이 쥐어져 있었다. 특히나 그 책에는 성경의 내용이 적혀있는 듯 종이가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 나, 작은 야곱! 이 손에는 신벌의 장부가 들려있소이다. 모든 죄와 벌을 심판하리!

- 마태오! 그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 이 손에는 죄를 잡는 철퇴가 있외다.

- 토마스! 그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 이 손에는 독이 발라진 단검이 들려 있외다.

- 발토로메오! 그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 이 손에는 땅을 여는 활과 화살이 있소이다.

- 필립보! 그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 이 손에는 잡는 것이 묶는 것이 있외다.

- 요한! 그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 이 손에는 복음을 외는 입이 악담을 하는 것이 있소이다!

- 제베데오의 야곱! 그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 이 손에는 악을 벌하는 도끼가 있소이다.

- 안드로! 그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 이 손에는 낚는 그물이 모든 것을 얽는 인명의 굴레로 얽힌 그물이 있소이다!

안드로까지 한 마디씩을 끝내자. 이내 모든 11명의 사도들이 베드로를 가운데에 놓고 외쳤다.

- 하늘을 여는자! 역십자가의 주인! 신벌의 대행자. 베드로! 당신의 손에 쥐어진 것은 무엇이로이까!

- 이 손. 이 손에는 하늘을 열고 땅을 벌하는 열쇠가 있외다!!

콰아앙. 화르르르륵! 붉디 붉은 베드로와 그의 손에 쥐어진 화염검에 화염이 붙어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아직 신벌은 끝나지 않았다 괴물놈들아! 크하하핫!!!

챙. 가볍게 날아드는 화염검을 가짜 스카디인 리샤가 기괴한 각도로 꺽어진 검으로 막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단의 변종 드워프들과 12사도의 싸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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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속보입니다. 현재 바티칸 제국의 수도인 바티칸 교황청은 쑥대밭이 되었으며, EU연합은 지금부터 유럽의 모든 국력을 활용하여 대룡전(對龍戰)을 공표하였습니다. 이태리, 독일, 영국, 에스파냐, 노르웨이, 그리스, 보스니아, 바티칸 등 각국에 있는 기자들에게 연결 해 보겠습니다"

잠시 Tv의 화면이 검게 흐려졌다가 완전히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폐허와 기자로 보이는 여성.

"네, 바티칸의 수도 교황청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용이 없으며, 마치 베히모스라도 왔다 간 듯이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생존자는 계속 수색 중이나 경찰측에서는 이미 반 포기한 상태입니다. 교황 성하의 옥체는 알 수 없으며, 이미 복구되었다던 12사도 중 11기의 사도가 반파되어 있습니다. 그리고...1사도 시몬 베드로와 안데르센 신부의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화면이 바뀌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전쟁터가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맹렬하게 스무기 가량의 트론과 그에 맞서는 용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예, 이곳은 이태리의 수도 로마입니다. 이태리는 로마와 중심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방에 대해서 연락이 두절된 사태라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방금 33분 전 오후 20시를 기점으로 일명 '드워프'라 불리는 용이 습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통 털이 수북한 거인이 아닌, 지금의 드워프는 단단해 보이는 갑옷과 오우거(도깨비)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치지직. 화면이 두절되었으며, 이어서 뉴스 속보의 앵커가 사과의 말씀을 너저븐하게 주절거리며, 다음 화면을 보였다.

"아, 이곳은 아직 용들의 피해를 받지 않은 그리스입니다. 그리스에는 명실공히 12사도를 제외하고는 최강이라는 아테네와 제우스, 아레스 3신이 수호하고 있으며, 앗! 지금 용들이 나타났습니다. 적은 '드워프' 입니다. 마치 오우거 같은 모습입니다! 지금...아, 아테네의 팔이!!..."

치지직. 연 이어서 보스니아, 노르웨이, 에스파냐 등지의 통신이 두절되었다.
툭. 당황한 앵커의 모습이 바텐더의 손가락 놀림에 흑백으로 사라져 버렸다.

"쳇, 어차피 세상은 망할거라니까. 그렇게 생각하죠? 나는 맨 처음 용이 나타났을 때부터 알았다고..이러면 북극이나, 저기 제일 강력한 트론이 지킨다는 시베리아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니까요?"

바텐더는 준수해 보이는 외모를 지니고 연신 칵테일을 한 통에 섞어 넣었다. 짤랑. 어두운 그늘에 가려진 손이 불쑥 나타나 금화 두 전을 내려놓았다.

"아직..세상이 망하기엔 이르지. 크큭"

사제복 위에 검은 코트를 걸친 듯한 그는 마치 전혀 사제의 행동거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으로 바를 나섰다. 그의 왼 뺨에 길게 난 흉터와 유난히 번뜩이던 안경이 바텐더의 인상 깊게 자리잡았다.
콰앙-! 바의 창문으로 간간히 보이는 것은 거대한 발. 붉은 발은 이내 바 옆을 스쳐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뭐, 뭐지?!"

지금 이 순간 만큼은 UFO를 믿고 싶은 그는 이내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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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뚜-뚜-. 마지막 희망이었던 독일에서의 통신이 두절되었다.

"어떻하죠? 수상?"

힘 없는 여인의 머리에 씌워진 것은 왕관이었고 그것은 그녀가 세계 단 하나뿐인 여왕인 엘리자베스 프라인스 2세,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아직도 그 관을 놓지 못 한 욕심 많은 여편네였다.

"우선은 미국에 호출을 해야합니다. 아니면 나리어스 유라시아에 통신을 넣거나, '그것'을 꺼내야 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르트 수상은 심중한 얼굴이었다. 여태 여왕의 삼촌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부를 쌓았다. 이대로 무너지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어쩔 수 없습니다. 당장 나리어스 의회에 연락을 넣어주십시오! 아니, 유럽지부라도 좋습니다. 대체 나리어스 유럽지부는 뭘 하고 있는 것 입니까!!"

결국 여왕의 말 끝은 짜증이었다. 그 죽음에 대한 압박이 바로 코 앞에 오면 그것은 공포로 변해 절규가 될 것이다.

"알렉산더 스투쿠프 총통은 현재 스위스에 있다고 합니다. 유럽지부에 소속된 양산형 112기, 정예 S급 파일럿이 조종하는 것들이 50기 모두 유럽 전체에 흩어져 있습니다. 5분 뒤에 덴마크를 지나, 이곳 런던에 도착할 거라고 합니다"

알렉산더 스투코프 총통. 유일하게 스스로 트론 '이미르(북구 주신이 죽여 대지가 되었다는 거신족)'의 파일럿이며 그 능력이 뛰어나 마더 컴퓨터 자체가 기체 안에 들어가 있는 괴물같은 트론, 세인들은 혹 유일하게 스카디 같은 괴물과 맞설 수 있는 트론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괴물. 반면 철저하게 실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이이기도 하다.
삐이이이-. 경계음이 울린다. 런던 중심부에 시계탑에서부터 울려퍼진 붉은 빛과 함께 거대하고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본국의 트론은 모두 출동한다. 반복한다 영국의 트론은...

경계음과 함께 기계음이 섞인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성 이곳 저곳에 울렸다. 이어서 성 주변으로 거대한 트론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영국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수상, 무슨 용이지요?"

"뇌룡, 케찰코아툴르스(Quetzalcoatls)와 화룡이로 명명된 라그니쉬(Lagnicy)..랍니다"

절망적이었다. 유라시아 지부의 소수 정예형태로써 맞서기가 쉬운 용이 영국에 나타나다니.

"어, 어째서!! 그런 괴물들이 이 수도에 접근할 때까지 몰랐죠?!"

"죄송합니다"

"아, 아무튼..어서 유럽 지부의 트론들이 빨리 도착해 주기를.."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나라에서 생산한 트론 보다는 거의 생명공학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된 나리어스의 트론이 네 배 가량 성능이 뛰어난 것은 많은 검증을 통해서 확인되었으며,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하는 파일럿들 보다는 용들과의 싸움을 밥 먹듯이 하는 나리어스의 파일럿들이 백배는 더 나을 것이기에.

- 여왕 폐하! 나리어스의 트론들이 도착해 현재 런던 시가지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오퍼레이터의 목소리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여왕의 얼굴은 정말 환하게 빛났다.

"누, 누가 왔죠?"

- 여어-. 안녕하십니까 여왕 폐하!

이 목소리, 걸걸하고 호탕해 보이기 그지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무패의 사나이 알렉산더 스투코프 총통이었다.

"총통!"

이렇게 그가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리어스의 간섭으로 인해 목의 가시와 다름없는 저들이 이토록 반가울 때가 있을까! 여왕은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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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유일하게 코어 속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인간은 알렉산더 그 뿐일 것이다. 특히나 액체서 점유질을 이용한 코어가 아닌, 마치 오락기처럼 기동시킬 수 있는 형태의 코어, 바로 마더 컴퓨터 그 자체를 이 속에 넣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담배연기에 뿌옇게 흐려진 스크린을 보던 알렉산더가 웃었다.

"재미있잖아?!"

그는 싸움을 좋아했다. 철컥. 맨 처음 나타난 것은 파랗게 빛나는 광검(光劍) 레이져 유도를 이용한 고속유동성 광자의 절삭성을 이용한 검이었다. 한마디로 광속으로 요동치는 검인 것이다. 거대한 흰색의 기체는 튼튼한 다리로 뛰어올라 엑스트라가 분명해 보이는 헬 하운드 한 마리를 베어 넘겼다.

- 다음은 누군가?!

재미들린 듯한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이런 것일까? 마치 고대의 전사처럼 무장된 이미르는 알렉산더의 조종에 따라 거의 스카디에 비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분명 그 자신의 동체시력이라던가 반사신경은 천부적일 것이다. 본래 능력의 반도 못 미치는 것으로 트론을 이정도 강함까지 끌어올리다니.

- 얘들아, 케찹툴러스란다!!

- 총통! 케찰코아툴르스입니다!!

- 쳇, 그게 그거지.

한 번 웃어 넘긴 알렉산더는 다시 한 번 광검을 들어올렸다. 자그마치 2000도에 육박하는 1000만 볼트의 벼락을 무시한 광검의 광자들은 거대한 용을 베어넘겼다.

- 자,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도마뱀 한 마리 보내 줬다! 다음은 뭐냐?!!

오랜 세월 전장을 떠돌아다닌 용병이랄 수 있는 그의 몸놀림과 적응력은 그와 함께한 유럽 지부 친위대들 역시 혀를 내둘렀다. 총 넷 사총사라고도 불리는 넷은 사실상 총통의 현란한 움직임 때문에 거의 하는 일이 없었다.

- 이익, 이 놈들 괴물 아니냐!!

정작 당황한 것은 라그니쉬였다. 이른바 중간보스랄 수도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닌 용이 자신들이다. 그런데 약간 약하지만 동급이 케아코찰툴르스가 너무 쉽게 무너졌다. 그의 심장은 위험성 적신호를 미친듯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 자, 불도마뱀!! 덤벼라!

- 크아앗!!

결국 라그니쉬가 택한 것은 도망. 베히모스에게 죽건 이 녀석에게 죽건 마찬가지라면 조금이라도 더 사는 걸 택하고 싶었다. 결국 그 시간차는 아주 짧았고 라그니쉬 역시 케아코찰툴르스와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 에..뭐야? 쓰레기 잖아? 얘들아! 여기 끝났다. 베히모스 찾으러 간다!

휭하니, 다섯의 트론들은 런던의 반 이상을 개박살 내 버린 다음에 사라졌다. 허망한 것은 수상과 여왕이었다. 다만 그들 마음 속에서는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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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바로 방금 총통이 떠난 뒤, 유럽지부의 본부라고도 할 수 있는 스위스에 스카디가 나타났다. 물론 그것은 리샤 발렌타인.

"꺄하하하하-!"

상당히 발랄하고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유럽지부 건물인 '미드가르드'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물론 주변에서 쏟아지는 레이져 유도를 통한 미사일 역시 무용지물, 그 뒤에는 강렬한 눈빛을 뿌리는 거대한 코끼리. 베히모스.

- 적당히 하고 철저하게 인간들을 말살시켜라.

"응 파파."

파파라, 베히모스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인간들에게 웃음 따윌 보이기 싫었다. 그딴 버러지들 따위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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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우리의 임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저 놈들도 죽일 것이다. 핵미사일 발사하라!"

이미 미드가르드의 대원들은 포기해 버렸다. 두 부장의 손에 들린 적색 열쇠 두 개.

"제 1 봉인 해제, 게이트 열립니다!"

"제 2 봉인 해.."

어처구니 없게도 베히모스는 그런 이들을 놔두지 않았다. 그의 특기는 염력, 모든 것을 꿰뚫은 심통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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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했군

시체가 되어 널부러진 이들을 보며, 베히모스는 거대한 코로 주변을 박살내 버렸다. 화르르륵.

- 뭐냐?

파아아악. 거대한 홍염(紅炎)의 불길이 베히모스의 몸을 향해 내리쳐진 것, 단단함이 보통을 넘었다.

- 베드로!!

"어? 안데르센 아저씨 살았네? 꺄하하하!! 나랑 놀자"

베히모스는 급하게 빠졌다. 그는 절대적으로 사령관 타입이지 멍청한 레비아탄처럼 밀어붙히는 타입이 아니다. 베드로는 리샤가 상대해줄 것이기도 했기에 우선 베히모스는 빠져 그가 천공의 열쇠 '미카엘'을 사용하지 않는가에 대한 주의만을 살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저 먼 우주까지 자신의 염력이 닿질 않기 때문에.

-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크헤, 크헤헤헤헤헤헤헤헤!

전에는 보지 못 했다. 일곱 자루의 광검으로 이루어진 단검이 날아들었다. 분명히 그것은 7사도 토마스의 광단검이었다.

"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일곱 자루 중 다섯 자루의 단검에 맞은 리샤는 비명을 내지르며, 땅으로 엎어졌다. 그를 놓칠새라 거대한 철퇴가 리샤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어 그 머리통을 뭉게버렸다.

- 이것은 마태오의 것이다.

콰아앙. 유다의 것인 자선창이 리샤의 심장으로 보이는 왼쪽 가슴을 찔렀다.
쿠우우. 이번에는 깊숙히 찔러들어간 낫이, 곧 다테오 유다의 검이, 발토로메오의 화살이, 야곱의 도끼가 리샤의 온 몸을 난도질 해 버렸다. 처참하게 찍히고 갈라진 그 리샤의 몸체를 바라보던 베드로가 섬뜩한 안광을 흩뿌리며, 마침내 붉게 홍염을 타올리는 성검으로 리샤의 목을 내리찍었다.

-에헤헤헤, 에-헤헤헤헤헤헤헤헤헤-!!!

미친 듯한 광소, 하늘에서 추락했다는 루시퍼의 목소리가 이와도 같은 가? 지옥도가 그대로 펼쳐진 붉은 베드로와 피칠이 된 스위스의 폐허, 넝마조각이 되어버린 리샤의 스카디.

- 겨우, 그것이냐? 겨우 저렇게 해 놓고는 마무리 한 것이냐?

베히모스가 웃었다. 안데르센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너무 크게 본 인물이다.

- 이 것으로 끝날리가 있겠느냐? 크헤헤헤헤!!!

번쩍. 아찔하게 눈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은 하늘에서 대천사 미카엘이 뿌리는 황금빛 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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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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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헤, 크헤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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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지울 듯한 빛무리가 터진다. 아무런 소리도 모습도 생각도 떠오르지도 않는다. 혼돈에서 진리로 뒤바뀌는 빅뱅은 이런 것인가.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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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와아아아..아...

"꾸웨에.."

점액질처럼 된 핏물 속에서 이미 멈춰버린 듯 주저 앉은 베드로를 바라보던 베히모스가 일어섰다.  끈적거리는 초록색 피로 칠이 되어버린 베히모스는 움직이기도 버거운 듯 천천히 한 걸음을 옮겨 죽은 듯 아무런 움직임 자그마한 숨만을 내쉬는 소녀를 집어올렸다.

곧, 두 용은 사라졌다.

"크크큭...아멘"

베드로의 위에선 성경을 든 누군가가 서 있었다. 흑색 코트 안에 사제복을 입고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