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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악법도 법인가? 악법은 지켜야 하는가?

2006.11.01 23:37

위대한혁명가 조회 수:814 추천:1

1)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너 자신을 알라'와 '악법도 법이다'라는 귀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중학교 때 교과서에 나와있는 그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어두운 감옥에 갇혀서 독배를 들고 묘한 표정을 한 어느 할아버지가 내가 기억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다. 예전에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내게 가졌던 의미는 위의 연상이 전부일 것이다.

그의 어구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비록 내가 나 자신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그 노력의 과정에 소크라테스라는 특정 인물이 영향을 끼친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대학에 와서 법대의 교양 선택 과목을 들을 때에야 비로소 법적 안정성이라는 말을 이해한 나로 봐서는 아마 그러한 기억이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법에 무지했던 내가 약간의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제공한 것 같다. 그리고 신문 지상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국가보안법, 노동법 등을 나의 사고로 다시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2) 강정인이 전제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통념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고, 스스로 재판의 결과에 승복하여 독배를 마신 투철한 준법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소크라테스는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고, 나아가 그는 법을 지키기 위해서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정인은 과 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언급과 행동을 비교하면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잘못된 의식을 바로잡고자 한다.

소크라테스가 처했던 상황은 다음과 같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다. 철학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스스로의 생각을 전개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생각은 그가 도출한 절대적인 진리로 구성되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철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당시의 사회 현실에서 드러나는 여러 모순된 문제점들을 파헤쳐 사람들에게 진정한 바름을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시민들과 대화했다. 그 대화는 서로에게 질문과 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소크라테스는 반론이나 반증을 통해 상대 논리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뛰어난 능력으로 유명해졌다. 일부 뜻있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의견에 동조했으나, 당시 지배층이나 보수층에게 소크라테스는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재판을 빨리 끝내고 무죄로 석방되는) 변론을 하기 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주장하였다.

재판의 결과,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언도 받았다. 그의 친구 크리톤은 감옥으로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해외로 망명 혹은 도망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 권유를 거절하고,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이 상황을 두고 -근대 한국의 정치 세력 및 법조계를 포함하는- 후세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법의 판결을 존중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즉, 소크라테스가 잘못된 혹은 부당한 재판에 의해 독배를 마신 것은 그 부당한 재판의 결과에 승복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名言 ?)은 법의 타당성 혹은 정의에 상관없이 모든 법적인 결정은 마땅히 존중되고 그대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법에 의해 목숨을 잃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일제 시대, 군사 독재 시대에도 법은 만인에게 공평한 혜택을 나누어 주기 보다는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 왔던 것이다. 때로는 법의 정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 부당성을 바꾸고자 노력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소크라테스의 언행에는 속된 표현으로 '꿀리는 혹은 쪼는' 태도로 소극적인 대응 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지배층에게 소크라테스는 자신들의 권익을 수호하는 법의 든든한 후원자로 남아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통념과 달리 소크라테스의 실제 행적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본 강정인의 글을 보면,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이 철저하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한 사실은 없다. 곧, 그는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와 법과의 대화 속에서 그와 같은 말을 유추하여 해석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그 사람들이 을 토막 살서(書) 했거나, 강간 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인품, 그 전의 행적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책의 작은 한 부분만을 해석하여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뜻이 여러 가지인 영어 단어를 문맥 속에서 이해하지 않고, 하나의 의미만을 사용해 해석에 적용하는 것과 같다. 의 소크라테스와 의 소크라테스가 같은 인물이라면, 소크라테스가 한 행동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과 전혀 무관한 것이 된다. 이렇게 이제까지와 다른 해석을 내리는 강정인의 논거는 자신의 논리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서 인용되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주장은 상황론적인 해석이다. 즉,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은 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독배를 거부하고 해외로 도망하는 것은 소크라테스 자신의 철학, 주장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행동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지켰던 것은 악법이 아니라, 법보다 더 상위에 있는 것, 바로 진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를 법의 수호자로 인식하는 것은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을 알고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지배자에게 잘 세뇌되어 있는 상태로 인식될 수 있다. 진실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악법을 지키기 보다는 악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하는 인물에 가깝다. 소크라테스에게 법이라는 것은 생활에 필요한 한 가지의 필수품이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법을 준수하기 위해서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 독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은 철학의 하위에 위치하는 개념이다. 강정인의 결론은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잘못된 믿음은 마땅히 바로 잡혀야 한다. 일반 대중의 의식 속에 악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면, 진리를 왜곡하는 지배층의 만행도 사라질 것이다.


 


3) 나는 어렸을 때 당시 TV에 나오는 정치보안법 위반자들이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약간의 나이를 먹으면서, 그 사람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깨닫게 되었지만, 지금도 법을 어기는 것은 여전히 좋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과격한 방법으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주장하는 이들(ex. 학생운동가, 노동운동가)을 볼 때면, 왜 그들은 현 체제 하에서 정당한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 항상 몸으로 자신을 주장할까하는 의문도 가진다. 즉, 부당한 점이 있으면 자신이 출세해서 고치면 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읽었던 '계급과 평등'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의문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출세하는 과정도 부당한 것이다. 출세해서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해도, 그 잘못된 것 때문에 출세하기 어려우니 할 수 없이 선택한 것이 그와 같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들과 같은 계급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슬펐다.

진정한 동지애는 아니더라도, 일말의 연민과 죄책감이 함께 느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정치권에 대한 저항보다 법에 대한 저항이 더욱 힘들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과거 4.19로부터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정치권에 돌을 던진 적은 있지만, 법에 대해서는 돌을 던진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아마 눈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에 먼저 돌을 던지다보니 우선 순위에서 법이 밀려났을 것이다. 그리고 법이라는 개념이 시민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고정된 지위 혹은 이미지도 그러한 현상에 한 몫 했으리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법은 바로 우리가 돌을 던져 왔던 정치 지배층이 만든 것이고, 그 법의 이미지도 우리가 돌을 던져 왔던 정치 지배층이 우리의 마음 속에 심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돌을 던질 때에는 대상의 외양 뿐만 아니라, 그 심층의 것에까지 던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대중의 의식이 올바르게 정립될 때, 소크라테스의 일화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후세의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악법도 법이다. 하지만 법일 뿐이다. 잘못된 법은 마땅히 바르게 고쳐져야 한다. 그것이 법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아마 소크라테스는 지금도 Hades에서 외치고 있을지 모른다. '내 이름 돌려다오!'


 


단지 투철하고 강압적, 이유를 모른채 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준법 정신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인간에게 피해를 되돌아 진다면, 그 법은 정녕 옳은것인가? 악순환의 톱니바퀴에 어쩔수 없이 연결되어 닳아 버려져서 악법이라는 톱니바퀴에 순응해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악법에 역마찰을 가하는 존재가 되어야하는가?


 


강력히 추천하는 참고 서적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저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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