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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유언비어와 천안함 사태

2010.04.12 14:26

PianoForte 조회 수:412 추천:1

 


흔히 민중 속에서 발생하여 퍼지는 뜬소문을 한자어로 유언비어라 합니다. 이 유언비어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렸든지, 혹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졌든지(물론 최초 근원은 있겠지만), 아주 근거 없는 헛소문이든지, 상당히 논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소문이든지, 하여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띠게 마련이죠. 공통점이 있다면 '진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인데, 소문이 진짜다/거짓이다라는 게 명확히 가려지면 그 시점부터 그건 이미 유언비어가 아니죠.


 


저런 특성 때문에, 유언비어는 보통 민중이 정확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사회일수록 잘 퍼집니다. 고대로부터 전제군주제 사회에서 유언비어가 매우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은 군주 또는 지배층이 정보를 독점하는 체제의 특성 때문이죠. 이들에 의해 전달되는 정보는 그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민중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얻고자 합니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이 없었던 옛날에는 사실상 '입소문'이 이러한 역할을 전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벽서니 대자보니 방식은 다양했지만 그것들이 널리 퍼져나가는데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반드시 쓰입니다). 이것은 정보의 최초 유포자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보의 근원을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잘못된(혹은 올바른) 정보를 퍼뜨리면 그 근원을 잡기가 매우 힘들죠. 그러다 보니 역사적으로 누군가를 타도하려는, 혹은 여론을 조성하려는 세력은 '위험은 적으면서 효과는 큰' 전략으로 유언비어를 자주 활용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유언비어를 예방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대책이 있으니,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과 '정보의 통제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전자는 대체로 '투명한 정보 공개'이며, 후자는 '언론통제의 강화'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사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든 정보를 정직하게 공개함으로써 민중이 참과 거짓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소문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만 있다면 굳이 거기에 의존할 필요가 없거든요. 참 쉽죠? 그런데, 이 방법은 정보 통제를 심하게 해 왔던 사회에서는 대체로 쓰기 힘듭니다. 정보를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공개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예를 들면 북한 인민들이 외부의 정보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게 된다면, 북한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정보 통제의 강화'를 택하게 됩니다.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면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또 이것도 한계는 있습니다. 대체로 무언가를 '통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방법을 쓰는 게 보통인데, 인간의 감성이란 반복적으로 자극받다 보면 서서히 마비되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 같은 효과를 계속 보기 위해서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갈수록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거죠. 하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게 한계를 넘어가면 한 번은 사단이 나곤 하죠(혁명이라든지 하는 방식으로).


 


이번 천안함 침몰사고를 두고 정말 많은 '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침몰 원인만 두고도 북한 잠수정의 공격이네, 선체가 낡아서 스스로 쪼개졌네 등등 정말 무수한 주장들이 피고 지고 하죠.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단 하나, 최초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부와 군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침몰 시각만도 몇 번을 바꾸어 발표했는지 모르고, 브리핑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면 다음 브리핑에서는 말을 바꿔버리는 뭐 그런 식이었죠. 현장 증인인 생존 장병들은 열흘 이상 입을 닫게 하고,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다가 열흘이나 지나서 '공식석상'에서 '공식적'인 발언을 하게 만듭니다. 사고 직후 이회창씨가 '정치인의 위문조차 가로막는다'고 투덜거린 일도 있었는데, 정치인 개인의 호오를 떠나서 생존자들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졌다는 얘깁니다. 과연 군 주장처럼 단순히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이기만 할까요? 과거 서해해전이나 총기난사사건의 경우만 봐도, 군이 '정보 통제'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열흘이나 지나서 입은 열지 않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보의 신뢰도 중 중요한 하나가 바로 '시간'입니다. 정보란 시간이 지날수록, 거치는 단계가 많을수록 그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정보가 변질 혹은 가공될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군이나 정부가 뭔가 숨길 게 있다면 그 열흘동안 생존자들을 통제하면서 사전 공작을 하지 않았으리란 법이 있을까요? 왜 하필 '열흘이나 지나서'였을까요?


 


이번 사태에 대해서 국민들은 단 한 번도 정확한 사실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는 분명 아니다' '아마 ~일 것이다' '~일 가능성이 있다' 뭐 이런 식이었죠. 이미 국민들의 분노는 천안함 침몰 자체보다 사실을 제대로 공개하려 하지 않는 정부와 군에 더 집중되는 느낌입니다. 알면서 숨기는 거면 말할 나위도 없고,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라면... 그래도 까일 이유는 충분하죠. 침몰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 침몰 시각 하나 제대로 정리가 안 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윤곽이 안 나온단 말입니까.


 


정부와 군이 사태를 좀 수습하려면 지금이라도 가능한 모든 정보를 다 까발릴 필요가 있습니다. 뭐 군사 기밀까지 다 공개하란 건 아니지만, 거기에 걸리지 않는 것들은 가능한한 다 밝혀야 합니다. 이미 시간이 상당히 지났기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지금같이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상태를 조금 교통정리하는 건 가능하겠죠. 정말 숨기는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좀 고쳐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만약 숨기는 게 없는데도 저러는 거라면, 야 이 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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