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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열매와 씨앗

2006.08.14 02:39

로이초호기 조회 수:421 추천:2

--이 글은 제가 제 홈페이지에 썼던 글입니다.--


 


 


 


 


 영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움직임과 소리'라고 믿고있다. 영화에서 이 둘은 필연적이다. 영화의 제작단계를 크게 삼분한 기획 - 촬영 - 편집 어디에서도 절대적인 위치를 쥐고 있는 두 열쇠다. 감독은 콘티와 스토리보드를 만들 때는 물론, 그 훨씬 전에 시나리오가 탄생하기 전부터 몇몇 장면들을 연구해가며 저 두 열쇠를 쥐고있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대중영화의 최초인 작품들엔 사운드가 없다. '관객'들은 토마스 에디슨의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단 몇초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동전을 소비하곤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흔히 우리가 흔히 '영화'라고 정의하는 것이랑 맞춰볼 때, 그 역사는 흑백 무성영화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경우 무성이긴 하지만 사운드는 존재한다. 영화배경음악(이 때는 주로 피아노)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현대작품들 속에서도 정지된 화면이나 무음인 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엄연히 말하면 그들도 움직임이며 사운드인 것이다. 액션 영화에서는 충돌신이나 폭발신에서 그 과격함과 타격감을 극대화 시키기 위하여 약 0.5~1초 동안 모든 소리를 죽였다가 폭발시키듯 재생하거나, 안노 히데야키같은 감독들은 정지된 화면을 몇초씩이나 (영화에서 이건 치명적이다) 스크린에 띄워놓곤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연출', 즉 영상과 소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어떨까? 일반 관객에게 있어서 스토리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보통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재밌다' 혹은 '재미없었다'는 그 스토리를 두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연출은 화려한데 스토리가 부족한 경우는 '화면빨만 좋다'라는 식으로 근성이 부족한 영화로 분류하고, 연출이 부족해도 스토리가 뛰어난 것 같으면 '수작이다', '완성도가 높다'라고 명작으로 분류한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까다로운 미식가처럼 더 깊게 볼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스토리가 영화의 품질을 직접적으로 좌우할 수는 없다고 본다. 흔히 관객이 느끼는 '스토리가 좋다'나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감상은 사실 '연출'이라는 포장을 통해서 감미하는 것이기에 스토리와 직접적으로 조우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 단순하게 말하자면, 스토리가 뛰어나도 연출이 부실하면 졸작이 될 수 있고, 스토리가 부실해도 연출이 뛰어나면 명작이 될 수 있다는 상식적인 말이 된다.

  하지만 이 '상식적인 말'에는 큰 함정이 있다. 그것은 마치 연출성이 스토리를 뒷받침해주는 식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그 그렇지 않다. 스토리는 '재료'라고 볼 수 있다. 엄연히 말하면 재료는 영화의 분위기, 컨셉같은 거고 스토리 (즉 시나리오)는 전체적인 방향을 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여기선 재료라고 해도 충분하다. 이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요리사의 능력을 판가름 하듯, 감독은 그 스토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그의 기량을 증명한다.

  이렇게 되면 연출이 그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그 연출을 뒷받침한다고 보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물론 스토리의 비중을 살리기 위해 '서로 밀고 당기며 이끌어가는 것이 명작이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관점의 차이지만, 완벽한 스토리로 명작을 만드는 것 보다 빈약한 스토리로 명작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감독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결국 영화의 스토리가 전달되는 방법은 연출을 통해서다. 관객은 화면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보는 것이지,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자막예외). 무엇보다 요즘 많은 신인감독들이나 특히 영화 제작자들이 시나리오 하나에 죽고 사는걸 봐서라도 '스토리는 엄연히 2번째다!!'라고 크게 말하고 싶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한국의 작품들엔 제법 뛰어난 스토리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는 감독은 소수에 불과하다.


  좀더 명백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적는다면, 요즘 감독들은 이러한 영화의 본질을 잊고 자꾸 다른 곳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주위에 영화를 좋아하는 어른이 계신다면, '요즘 영화는 예전 영화를 모방한 것 뿐'이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맞는 말은 아니지만 여기엔 어느정도의 사실도 포함되어있다. 예전영화일수록 이런 영화의 본질에 충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 세대를 거쳐오면서 신세대의 관점이 흐트러지게 된 것이다. 다른 영화가 훌륭할 수 있었던 그 '씨앗'을 배우지 못하고, '열매'만을 가져오는 것이 대다수다. 그리고 이 경우 대부분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없다.



  이 세계에서 순수한 창작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동물이며 사상과 문화 같은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아간다. 토마스 에디슨이라도 태어나자마자 무인도에 버려졌다면 훌륭한 발명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아인슈타인이라도 평생 독방에만 가두어둔다면 상대성이론의 우주를 구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창작인에게는 언제나 '모방'에 대한 의혹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 경계는 불분명해도, 작품을 모방하는 것과 영향을 받는 것은 다르다. 모방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그 '열매'를 가져오는 것이다. 자신이 뭔가 근본적으로 키워낸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보고 들은 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짜집기 해서 작품을 완성시킨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로 가득한' 작품들이 있다. 이런 장면들에겐 명백한 이유가 없으며 겉도는 느낌만 있을 뿐이다.

  영향을 받는 것은 그 '씨앗'을 가져오는 것이다. 자신의 선배가 이루어냈던 것의 더욱 본질에 다가가, 거기서 자신의 색깔이 포함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 경우 영화에서 같은 장면이라도 그런 장면을 넣는 데에는 감독의 확실한 동기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부자연스럽지 않다. 이것이 '응용'으로서 인정받는 것이다.


영화계 뉴스를 보면 언제나 시끄럽다. 저번 겨울 야수와 태풍의 부진을 '한국 관객의 취향이 달라졌다'라는 식으로 대서특필하는가 하면, '왕의 남자'를 가지고 또 난리법석이다. 또 언제나 '흥행코드'운운하며 여러가지 분석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언론의 몫이지 감독이나 제작자의 몫이 아니다. 영화에서 흥행코드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돈을 많이 들이고 잘나가는 스타를 캐스팅하면 관객이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론은 너무나 빈약해서 붕괴되기 쉽상이다.

결국 '왕의 남자'가 떴다고 해서 사극이 판을 치고, '신라의 달밤'이나 '조폭마누라'가 떴다고 해서 조폭물이 판을 치며, '엽기적인 그녀'가 떴다고 해서 러브코미디가 뜨는 것은 다 '열매를 따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런 형상이 없을 수는 없다. 영화계는 단 몇 안되는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졌고 점점 글을 써감에 따라 로이홈 자유게시판에 이 글을 올리는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 -_-;
그래서 몇자만 더해보겠다.


요즘 RPG게임들을 보면 이러한 '열매를 따오는'식이 많다. 액알을 만드는 것이며 단축 메뉴를 만드는 것은 이미 진부한 교과서가 되어버렸다. 더 나가 요즘은 얼마나 더 요란스러운 스크립트를 만드느냐가 주 무대다.
그러는 와중에 그 열매들은 점점 썩어가고있다. 2년전만해도 단지 소개를 보기만 해도 기대되던 작품들이 창조도시의 소개게시판에 주로 올라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 올라오는 횟수도 줄었을 뿐만이 아니라 진짜 기대되는 느낌을 받는 작품도 현저히 줄었다.

나는 가장 큰 원인이 RPG만들기 XP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말했었지만, 이 것은 '스크립트'라는 것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다른 부분에서는 너무나도 빈약하게 만들어진 툴이다. RPG95나 RPG2000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나도 게임을 만들어 보자!'라는 달콤한 의욕을 XP에선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더 나가 결국 이 툴은 '얼마나 스크립트를 화려하게 사용하는가'라는 쇼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씨앗은 아직도 존재한다. 지금 사람들이 잊어가고 있는 가운데에도 예전에 활발했던 RPG 만들기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그것'은 지금도 망각의 안개속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나는 그 씨앗이 나나 다른 사람들이 'RPG만들기'를 접하게 된 그 모든 이유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며, 우주를 움직인다. 자기가 플레이해봤던 그런 재미를 내가 다시 만든다. 이런 생각 하나만으로 RPG만들기에 빠져들기엔 충분하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RPG게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재미를 다시 발견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희망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을 잃지 않은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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