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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밥그릇 싸움에 정답은 있는걸까?

2007.01.31 04:07

협객 조회 수:682 추천:2

오늘은 그냥 두서없이 밥그릇 이야기나 해볼까 합니다.


 


대표적인 밥그릇 싸움 2개.


 


만화가 - 대여점.


의사 - 약사.


 


이 둘은 대동소이함에도 그것을 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밥그릇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둘은 매우 재미있는 양상을 띱니다.


 


소비자들이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 보는 바람에 만화책이 안 팔려서 가난해지는 만화가.


환자들이 의사처방전 없이 약사에게 약을 살 수 있어 환자가 안오니 가난해지는 의사.


 


둘 다 자유경제에서 공리주의에 희생되는 입장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사회가 그들을 희생시켜 얻어가는 이익을 결코 적다고 볼 수 없습니다.


 


가난하건 말건 만화 그려야 하고, 가난하건 말건 진료를 계속 해야겠지요? 양쪽 다 절대빈곤은 아닙니다. 먹고 살만해도 자녀교육, 노후불안 등의 상대빈곤을 겪고 있을 뿐입니다.


 


만화가들은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만화책 안 사도 좋으니까 빌려서 보지는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의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의사인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플 때 병원 안 와도 좋으니까, 처방전 없이 약국 가서 도박하듯 멋대로 넘겨짚고 자신이 의사인 척 약 사지는 말라고 하고 싶을 것이고, 보험처리 안되는 진료가 필요하면 외국 가서 치료받으라고 하고 싶을 것입니다. (보험처리가 안되는 진료는 과잉진료로 분류되어 환자가 아닌 의사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경제에서 공리주의는 어떨까요?


 


돈이 필요한 만화가는 결국 사회와 타협하여 대여점 상대로 공장형 만화 그리면서 삽니다. 의사? 태어날 때부터 의사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실력있는 의사들은 결국 미국 의사 시험 보러 한국 떠나는 겁니다. 환자가 불쌍하니까? 아픈 사람 도와주고 싶으니까? 미국으로 못가게 막을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실력있는 의사가 줄어드는 걸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의사인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의사보다 돈 되는 직업 찾아 가는겁니다. 대여점 주인하면 딱 좋겠군요.


 


대여점 덕택에 소비자는 2천원에 구입할 만화를 300원에 대여하여, 자그마치 1700원이나 절약하게 됩니다.


약사, 보험 제도 덕택에 환자는 20만원은 들어야 할 진료를 한 2만원쯤에 해결하여 자그마치 18만원이나 절약하게 됩니다.


 


그 절약한 돈이 어디서 나온걸까요? 대여점 없다고 해서 만화책 샀을까요? 2천원 쓰기 싫어서 안 샀을지도 모릅니다. 약사, 보험 제도 없다고 해서 병원 갔을까요? 20만원 쓰기 싫어서 안 갔을지도 모릅니다.


 


대여점 없어도 어차피 안 샀을 사람들이 빌려 보니까 만화가에게 법적인 피해가 없듯이, 어차피 진료는 안 받았을 환자들이니 의사에게 법적인 피해는 없습니다.


 


한국만화의 미래가 암담하고 하듯이, 한국 의료업계의 미래도 암담하다고 하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한 말도 다 이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소비자들, 입으로는 "참 걱정이네요"해도, 정작 주머니 사정은 그렇지가 않을 것입니다. 발등에 불 떨어졌는데 십년 후 미래 이야기할 사람 있습니까?


 


당장 주머니에 2만원밖에 없는데 일단 살고 봐야겠지요. 당장 주머니에 3백원밖에 없는데 2천원짜리 만화책 사겠다고 모을까요?


 


"그래도 의사는 가진 자에 속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표면적으로는 맞습니다. "들인 돈이 있으니 본전은 빼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히 인기가 없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말을 조금 고쳐볼까요?


 


"들인 노력이 있으니 그만한 대우는 받아야 한다."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만화가들도 이에 대해서는 동의할 것입니다. 공장형 만화를 그리는 것과, 장인정신이 깃든 만화를 그리는 것의 차이 정도는 만화가들도 알 것입니다.


 


유복한 집안의 의사들 역시 들이는 돈이라도 그 부모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져 있을텐데, 당연히 부모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 버는 것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고 돈 벌기 쉬운 일 아닙니다. 만화가가 최고가 되기까지 힘들듯이, 공부도 최고로 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아실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만화가의 자존심을 팔아가며 공장형 만화를 그려서 번 피와 땀이 배어 있는 돈으로 자식을 의대로 보냈으면 자식이 그 돈 다 갚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식이 만화가의 길을 가고 싶을 때 의사인 부모가 돈을 못 벌어서 집에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장형 만화가의 길을 가는 것이 불가피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반면 공공의 복리를 생각해볼 때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발등에 불부터 끄는 일"이 우선인 것도 소비자의 입장입니다. 어차피 사지도 않을 것이니 삼백원에 빌려 보는 것이 우선인 소비자도 있습니다. 우선 급한대로 아프니까 20만원짜리 처방전 없이 2만원에 항생제나 진통제 정도를 사서 복용하는 것이 우선인 환자도 있습니다.


 


의사의 분노를 자극하는 약사업계. 만화가의 분노를 자극하는 대여점.


 


대여점이 가진 것, 그리고 약사가 가진 것.


 


만화가에게 "억울하면 대여점 개업하세요"라고, 의사에게 "억울하면 약사하시면 되잖아요"라고 해봅시다.


만화를 사랑하는 만화가. 그리고 환자를 진료하는 일을 사랑하는 의사.


 


만화가가 분통 터뜨리는 것이 만화를 사랑하기 때문인데, 의사가 분통 터뜨리는 것은 돈을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굳이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이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인데, 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사랑하지 않고 의사가 되길 택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만화가들이 만화책을 많이 사면 박리다매를 통해 만화책을 대량생산해서 700원에 팔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3백원에 빌려 볼 수 있는 것을 1700원이나 더 주고 사 보라는 건 자살행위를 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차라리 만화가가 팔리건 안 팔리건 위험부담을 자신이 떠안고 투자를 해서 만화책을 대량생산해서 700원의 값을 매기면 그 때 소비자가 결정하라고 한다면 문제는 다를 것입니다. 투자할 돈이 없으면 투자자를 끌어들이면 될 것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자살행위라고 보고 섣불리 투자를 못하는 것 역시 대여점과 경쟁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책값을 700원으로 낮추면, 대여점은 1300원을 절약하기 때문에 대여료는 100원이 됩니다. 소비자가 그 투자자가 되어 추가로 1700원을 내도록 해도 100원에 일곱권 빌려 볼 수 있는 것을 700원에 한권 사 볼지는 미지수이기에 소비자가 위험을 부담하게 한다는 발상은 경제적으로 뜬구름만 잡는 일입니다. 언제 사고나서 비명횡사할지 모르는 만화가를 믿기보다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여점의 싼 가격이 유지될 것이 일반이고, 따라서 부자 되려면 차라리 만화책 값을 전부 한 십만원쯤 받아버리는 게 낫습니다. 대여권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저작권은 존재하기 때문에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합법적으로 복사해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설령 그런다고 해도 값이 비싸면 그만큼 저작권 피해액이 올라가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하기가 용이해집니다. 물론 이것도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판매부수를 봐가며 시간을 두고 값을 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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