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대하여.
2007.05.18 09:18
예. 5.18 민주항쟁. 적어도 그렇게 배우고 있습니다. 29만옹의 독재에 반발한 광주 시민들의 봉기와 낙지를 싫어하시는 29만옹의 계엄령 선포.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이것이 우리가 대충 알고 있는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 이야기는 '폭동'을 진압한 독재정권에 의해 묻혀지게 되고 수십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좋게 보지 않는 이들도 많습니다. 과거의 일을 왜 하필이면 지금 꺼내서 국론을 분열하고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느냔 말이죠. 이것 참 웃긴 말입니다. 과거의 일을 진작 논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겨우 하게 된 것을 하필이면이란 말로 깎아내리고 있지요.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보고 '과거의 일은 잊자. 왜 지금까지 계속 질질 끌면서 한일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느냐.'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과거에 친일하고 독재세력에 빌붙어서 부귀 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계속 위에 남아 이런 말을 언론에도 퍼뜨리고 정치판에서도 하는 것이죠. 물론 5.18은 순수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아닌 무장 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5.18이 폭동이었다고 한다면 앙시앙 레짐을 타파한 프랑스 혁명이나 독재자 챠우세스쿠를 척살한 루마니아 혁명과 같은 무장 투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 까요? 그 때에 죽은 민간인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을 까요? 왜 정부는 외신기자의 출입을 막으면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을까요. 5.18은 아직까진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입니다만 적어도 폭동이라느니 북한의 선동이라느니 하는 망발을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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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을 하기에 앞서 잠시 미리 좀 피해갈 구멍을 만든다고 하면,
저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결론을 내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한번 다른 시각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지않을까? 하는 의도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자 그럼 우선 5.18은 과연 민주화 항쟁 이었나는 정의상의 의문을 가져봅시다.
우리는 5.18이 민주화 항쟁이라고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정답이라고 하면 그것은 민주화 항쟁이 맞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직도 5.18이 민주화 항쟁이 아니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겁니다.
이렇다는 것은 민주화 항쟁이라고 하는사람들은 지식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둔하고 독재정권에 놀아난 우민들 이라고 쉽게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는 겁니다.
물론 세상에 완전무결하게 만장일치되는 안건이란 별로 없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실 5.18에 관한 세간의 시각차는 결코 그 사건이 민주화항쟁이다. 라고 딱부러지게 정의하기엔 다소 찜찜한 면이 있다는 겁니다.
5.18이 민주화 항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중에는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중 일부는 폭동이다, 북의 선동에 의한 교란작전이다. 등등의 의견이 있지만. 이는 조금 극단적인 예이고. 대부분의 반대 주장은 5.18은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민주주의 사수를 위한다는 목적보다는 단순히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목적이 강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김대중 석방이 민주화다. 라고 말하면 할말없지만. 정확히 보면 또 그렇다고 보기에도 다소 무리가있죠) 만약 이러한 것이 진실이다 라고 말을 하면 얘기는 매우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라도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웅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하고 이에 저지당하자 시위대도 전경과 군인도 격해진것이고 그러다보니 발발한 사고가 되는것이죠. 즉 민주화 항쟁은 사고가 될 수도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은...
당시 군부가 정말로 광주에 북한공작원이 있었다 라고 굳게 믿고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그런일은 없었다. 군부의 과잉진압이다. 라고 났습니다.
물론 그 것을 결론낸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했는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역사라는게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와 그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고 결론내는 것이니까요.
아무튼 만약 그런일이 있었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그렇다면 그것이 진짜로 북괴의 공작이 있었다고 하면 그당시의 상황에서 우리의 군대는 평화통일을 위해서 출동을 하지않고 있는게 옳은가 아님 그때처럼 출동해서 방어선을 치고있는게 옳은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국가 안보의 중요성은 사실 지금도 매우 중요하고, 저 당시에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의 공작이 있었다면, 군대가 옳은 판단을 했었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수 있지요.
그리고 지금은 잘 교육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광주엔 별 희안하고 흉흉한 소문들이 다 돌았습니다. 군인이 처녀를 강간하고 죽였다느니 군인들이 더 포악해 지기위해 환각제를 먹었다던가 하는.
이 소문을 군인들이 퍼트렸는가, 광주시민이 퍼트렸는가. 누가했든 좋을게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국민들끼리 총칼을 들고 싸우고 싶진 않았을테니까.
여튼 5.18은 사실 석연찮은게 너무 많은 사건입니다.
사실 편하게 생각하고자 하면 사실 그저 누군가 정해놓은 것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는게 가장 쉽고 편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들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도록 태어나지 않았겠습니까.
김대중 정권이 들기 전까지 5.18은 광주사태 였습니다. 그 것이 김대중정부 들어 5.18민주화운동이 되었죠. 상당수 사람들은 이제야 명예를 회복하였다. 이제야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했고, 반면 당시 정권의 피해자격의 정권이 당시 정권을 심판하고 판단하는것 자체는 객관성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결론적으로는 5.18이 민주화 운동이 됐긴 했습니다만.
저는 그 것이 진실일거라고 100% 믿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폭동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북한의 선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다른 가정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망발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이 사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날지는 미지수지만. 좀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것에 관계된 사람들이 거의 없어지게 될 무렵쯤 되면 아마 지금보다는 더 명확하고 정확한 역사 해석이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실.. 지금은 너무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이 많이 살아있고 영향을 내뿜고 있습니다.. 객관적 역사적 해석이 사실 힘든 시기라고 봅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한거겠지만요.
간만에 눈에 띄는 주제가 올라와서 말이 길었습니다만.
요약하자면. 아직 역사적 판단이 어려운 사건에 대해서 여러가지의 견해를 낼 수 있음에도 특정 견해에 대해서만 비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rp2+|16325|+rp3+|main_si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