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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반전의 허무성

2007.05.14 14:48

로이초호기 조회 수:665 추천:10

 


반전의 허무성


 


 


반전.... 일명 '막판 뒤집기'로 통하는 이것의 힘은 위대합니다. 국내에선 처음 영화와 드라마에서부터 크게 중요시 되기 시작하며 결국 나중엔 '반전물'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내기까지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걸로, 작품 평가란에서는 '반전이 있다 없다'가 매우 중요한 감상포인트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사람들은 빈 껍대기에 쫓겨 주옥같은 알맹이들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1. 반전이란?


그렇다면 그 '반전'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대단한 것인가? 왜 사람들은 반전을 크게 따지는 건가?


반전이란 말 그대로 '뒤집기'로서 작가나 감독은 내용의 전개 중에 '보이지 않는 복선'들을 내포시켜두고, 어느 지점에서 방아쇠가 당겨지면 그 숨어있던 요소들이 한번에 튀어나와서, 내용의 흐름이 '반전'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관객들은 '미끼'에 끌려 다니면서 중요한 암시들을 놓치고 있다가, 그 반전에 해당되는 지점에서 작품은 '성난 이'를 드러내며 무방비 상태의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긴장감, 스릴 등등 다양한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궂이 결말 부분에 해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신 분열증을 겪는 수학자 '존 내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그것이 중반부에 위치하여서, 초반은 내쉬의 망상과 후반은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는 이야기로 나뉩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영화에는 다양한 뒤집기들이 존재합니다. 결국 그것은 이야기를 좀더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조미료인 것입니다.


 


 


2. 반전의 오해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반전'은 좀더 극단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막판 뒤집기. 즉 결말 부분에서 모든 것을 뒤집어서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영화를 말합니다. 흔히 알려진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는 마지막 몇분간 대사 하나 없는 단 한 장면 동안 관객들은 여러가지 감정들이 교차되며 마치 '폭탄을 받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전 영화'들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 '끝맛'이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신이 영화를 신중하게 보고 깊게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화 중간중간에 지나가는 수많은 요소들을 지나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는 재미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왜 재미있었는가?'를 자세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흔히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서, 훌륭한 미식가라면 자신이 먹는 요리가 정확히 어떻게 요리된 것이며, 어떤 재료가 쓰여졌으며, 어떤 조미료가 들었으며 결과적으로 맛이 어떤지를 하나하나 따지겠지만, 그저 생활에 요리를 잠깐 맛보는 사람들은 그저 맛만 좋으면 되었고, 평가해도 '고기가 잘 익혀졌네' 정도면 충분하죠. 영화도 마찬가지 입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재미있으면' 된 것이고, 끝난 뒤에 흔히 주고 받는 말은 '~~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더라' 정도지요.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 기술같은 것은 보지 않고 내용만 음미하고 만족을 합니다. (극히 당연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 중간중간에 있는 반전들은 두드러지지도 않고, 크게 인식되지 않습니다. 단지 이야기가 '톡톡 튀는' 느낌을 받을 뿐, 내용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지요. 반면, 막판 뒤집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자신이 90분 남짓한 시간동안 감상한 내용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는 극단적인 기법이니까요. 음식으로 따지면 처음 느끼는 맛보다, 끝에 남는 맛이 더 인상적인 것과 같습니다.


 


 


 


 


3. 반전의 문제


그렇다는 도대체 저의 불만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결국 반전이란 평면적인 이야기를 좀더 흥미롭게 만들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전하는 아주 좋은 것이 분명한데? 문제는 바로 '반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음식에 약간의 향을 더하는 조미료에 너무 빠져 버렸습니다. 어느덧 주 요리는 뒷전이고 그것에서 느껴지는 조미료의 맛만을 쫓아 다니고 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큽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위에서 보듯이 반전이란 결국 껍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훌륭한 반전'은 얼마나 멋진 뒤집기를 해내는 것이냐가 아니라, 그 뒤집는 내용이 얼마나 대단하냐에 판가름 되어야 공정합니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가 좋은 예입니다. 감독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주 내용으로 1차적인 재미를 제공하고, 마지막에 반전을 넣어서 주 내용의 모습이 바뀌며 2차적인 재미를 제공합니다. 결국 냉정히 말하면 따져야 하는 것은 뒤집기가 아니라 주 내용인 상식적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전 이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4. 반전의 악용


막판 뒤집기는 제작자의 입장으로 볼 때는 정말 흥미로운 도구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반전영화입니다. 물론 제대로 된 작품이라면 말이죠. 문제는 모든 반전 영화가 제대로 된 작품은 아닙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반전은 자신의 작품을 좀더 화려하게 만드는 기교이지만, 사업가의 입장에서 볼 때 반전은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일 수 있는 '떡밥'입니다. 이미 영화 평 따위에서 사람들이 '반전반전' 운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영화가 반전이 있다면 그 결말을 보기 위해서 보고자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느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탄생하는 것이 이리꼬이고 저리 꼬여버린 조잡한 영화들. 흔히 3류 멜로 드라마나 순정 만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억지 설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치 '누가 누구와 엮어지나?' 하나를 보기 위해 작품에 메달리는 듯한 자세, 그리고 최대한 높은 시청률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 억지 설정을 하며 이야기를 우려 먹을 대로 우려 먹는 작가들. ('사실 그녀의 남자는 배다른 형제였다!' 라던가, 계속 되는 제 3자의 난입으로 끝나지 않는 무한 삼각 관계)


 


결국 사람들이 반전을 노래하며 찾아다닐 수록 저질 영화에 반전 하나 포함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것이 돌고 돌아 악순환 될 수록 '반전이 없는 영화'는 무시당하기가 일수. 전 '그런 반전도 없는 영화'라는 조롱을 적지 않게 많이 보아 왔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제작자와 관객의 호흡이 있습니다. 특히 상업영화 같은 대중적인 매체는 매우 민감합니다. 즉 훌륭한 영화라는 것은 단순히 뛰어난 제작자들의 힘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몫도 매우 큽니다. 3~4년 동안이나 반전반전 노래를 하였으니 이제 식상해질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우리는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알맹이를 놓치고 껍대기만 쫓아 다니지 않았는지요. 반전만 찾는 관객들, 반전만 고집하는 제작자들.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보아야 할 때가 아닌지요.


 


이건 단순히 영화에만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 만화, 그리고 이 창조도시에 주 테마인 게임 제작에도 통용된다고 봅니다.


정말 화끈하고 재미있게 플레이 해보았던 수작들이 쏟아져 나온지 어연 수년.... 저는 굶주려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태어날 작품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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